’9·11‘ 20주년 미국, 낙관의 시대 가고 신냉전 시대 오는가

국제관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격화되고 있는 美中간의 냉전

9·11 대참사 이후 20년간 계속됐던 테러와의 전쟁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세계인을 짓누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30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 완료를 선포한 이후에도 그 테러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점차 격화되고 있는 미·중(美中)간의 신(新)냉전이다.

아프간 참전 20년 결산을 앞두고 미국 조야는 내심 착잡하다. 겉으로는 자국민의 희생을 기리며 단합을 외치고 있지만 ’내실(內實) 없는 20년‘, 미국판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미국은 2001년 9.11과 함께 아프간에 들어갔다가 20년 만에 철군했다. 오히려 국내가 문제다. 워싱턴 주류의 국가경영 능력은 의심받고 위협받고 있다. 좌파 쪽에서는 급진적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버니 샌더스 등의 진보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우파 진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대표되는 저소득 백인층에 기반한 민심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30년 전에는 낙관론 일색이었다. 소비에트연방(소련) 체제가 붕괴하자 게임은 다 끝난 듯 보였다. 20년 전 9.11이 터지기 전까지도 그 자신감은 여전했다. 9.11 이후 20년간 중동–이슬람권에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고 나니까 어느새 중국이 옆구리까지 바짝 추격해 왔다. 이른바 어부지리(漁父之利)의 형국이다. 

“20년전 하늘과 어쩜 저리 똑같지” 9·11 현장서 수십만명 고개 숙여

9.11 테러 20주년 기념식 현장바이든 대통령 우리의 최강점은 단결성명

9월11일(현지시간) 오전 8시46분. 뉴욕시 맨해튼 9.11 추모박물관을 비롯한 뉴욕 전역에서 일제히 조종(弔鐘)이 울렸다. 지난 2001년 9월11일 테러범들이 이끈 아메리칸 에어라인 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첫 충돌한 시각이다.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 모인 희생자 유족과 시민 수십만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일부는 눈물을 훔쳤고, 많은 이들이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한 70대 노부부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20년 전 하늘하고 어쩜 저리 똑같지”라고 속삭였다.

9월11일(현지시간) 뉴욕 9·11테러추모박물관에 모인 희생자 가족과 동료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9.11테러 20주년을 맞은 이날 뉴욕은 거대한 ‘제례(祭禮)의 도시’로 변했다. 일주일 전부터 관공서 등 곳곳엔 성조기 조기(弔旗)가 내걸리고, 도로와 거리 곳곳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추모 화환과 소형 성조기가 놓였다, ‘잊지 말자(Never Forget)’란 이름으로 각종 추모 행사와 공연이 이어졌다.

그라운드 제로와 9·11 추모박물관 인근엔 이른 아침부터 시민 수십만 명이 쏟아져나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유족이 아닌데도 장례식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꽃과 선물, 손수 제작한 ‘명예의 국기’ 등 9·11 기념물이나 당시 신문, 그을린 성조기 등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기념식장 반경 100m 안엔 유족 8500여명과 극소수 언론을 제외한 일반인 접근을 통제했는데, 현장을 멀리서 에워싼 인파 수십만명이 경건한 침묵과 질서 속에 기념식을 지켜봤다. 대부분 뉴요커였지만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에서 날아온 이들도 있었다. 군·경찰 특수 병력이 대거 투입돼 삼엄한 경계를 펼쳤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뉴욕 맨해튼 9·11추모박물관에 ’20년 동안 절대 잊지 않았다’라고 쓴 피켓이 희생자 사진과 걸려있다.

초등학생 자녀 셋을 데리고 그라운드 제로에 나온 40대 올리버씨는 “커다란 비극이었고 아직도 원인이 해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국가와 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을 후대에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태어났다는 20세 대학생 고메즈씨도 친구들과 함께 나와 “뉴욕의 아픈 기억, 그리고 그 이후 모든 이들의 노력으로 이런 일상을 다시 찾게 된 데 대해 이웃들과 기념하고 감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선 매년 해온 9·11 테러 희생자 2977명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는 의식이 총 네 시간에 걸쳐 치러졌다. 8시46분 이후 두 번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9시3분, 또 다른 테러가 워싱턴 DC의 펜타곤을 공격한 9시47분 등 기념비적 시각마다 총 6번 조종(弔鐘)과 함께 전국민 묵념이 이뤄졌다. 일몰부턴 그라운드 제로에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는 빛 두 줄기를 하늘로 쏘아올리는 ‘트리뷰트 인 라이트’ 점등식이 열렸다.

9·11 당시 테러 현장에 투입됐다가 343명의 사망자를 낸 소방대원(FDNY) 추모 기도회와 추모 행진이 맨해튼 5번가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서 열렸다. 소방대원들의 백파이프 연주 속에 시민들이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미국은 단일 공격으론 최대 희생자를 낸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시작한 중동 대(對)테러전쟁이 최근 아프간 민주정부 건립 실패와 미군 패퇴(敗退) 속에 미완의 종전(終戰)을 선언한 가운데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숨진 미군만 6600명으로 테러 희생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9·11 테러 이후 상시화된 미국의 감시 사회와 인종·종교 간 갈등, 국내 테러 빈발의 문제도 지적된다. 결코 완벽한 승리나 치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극히 일부 정치 세력을 제외하고 미 국민들은 국가의 역할, 역사적 기억에 대해 큰 합의를 만들고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왼쪽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커플,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이 11일 뉴욕에서 열린 9.11 테러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이날 뉴욕의 9·11 테러 20주년 기념식에 총출동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성명에서 “우리의 최강점은 단결”이라며 “단결은 서로 똑같다는 게 아니라 서로와 나라에 대한 근본적 존중과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취임 후 첫 9·11 테러 기념일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워싱턴 DC 등 피해 현장 세 곳을 모두 돌며 추모식을 이끌었지만 따로 연설을 하지는 않았다. 아프간전 철군 관련 논란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9·11 테러 때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펜실베이니아 섕크스빌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미국의 분열상과 국내 폭력을 비판하며 단합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만 이날 뉴욕 맨해튼의 한 경찰서를 따로 찾아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이 무능했다”고 맹비난했다.

 

‘9·11’ 20, 뉴욕은 다시 테러 공포아프간사태 보면서 악몽 되살아나

그라운드 제로찾은 시민들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 사라져정부도 다양한 위협 직면

“저는 이곳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환자들이 오지 않았죠.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이 장소를 더 많이 알아야 해요.” 9·11 테러 20주기를 1주일 앞둔 9월4일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나온 추모객 백발의 앤(79·여)은 20년 전 9월11일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저는 그때도, 지금도 뉴욕에 살아요. 그 당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날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죠. 사고 소식을 듣고 먼저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보건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곳에 의료진으로 나왔죠. 그날 바위덩이들과 덤프트럭이 오가는 모습이 아직 생생히 기억나요.”

20년 전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한 여성이 11일 9.11 테러 20주년 기념식에서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메모리얼 풀’을 찾아 희생자 명비(名碑)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 꽃을 꽂고 있다.

앤은 9·11 이후 한동안 집을 나설 때마다 문 앞에서 ‘다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포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었다. 9·11을 계기로 시작된 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자폭 테러와 혼란 속에 끝나며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앤은 “친구가 다음 주 토요일(11일)에 이곳에 라이팅(매년 9월 11일 쌍둥이빌딩을 상징하는 광선 기둥을 하늘로 쏘아올리는 행사)을 보러 가자고 했다”며 “하지만 이곳에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오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9·11을 계기로 만들어진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8월13일 “9·11 20주기를 전후로 다양하고 도전적인 위협 환경에 계속 직면하고 있고, 종교적 기념일 등이 폭력행위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포는 대물림된다. 이날 하얀 정복을 입고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미 군사학교 학생 레이(18·여)는 “9·11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매년 학교에서 9·11에 대해 배웠다”며 “이곳에 오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이 20년 전과 비교해 테러의 위험에서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아프간 사태를 보며 안전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미국의 가장 긴 전쟁’이라고 하는 아프간 전쟁이 20년 만에 끝났지만 뉴욕, 그리고 미국엔 또다시 테러의 공포가 드리워졌다.

아프간서 미군 철수한 시대의 종언 그리고 익숙한 역사의 귀환

  • 희생자126천여명그리고 전쟁비용 2조 달러

2조 달러의 전쟁비용, 그리고 12만6000여명의 희생자. 브라운대학교 왓슨 국제관계연구소가 발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에 투입된 내역이다. 연구팀은 비용산출을 위해 미국이 20년 동안 지출한 군사비와 채무이자 그리고 상이군인들을 위한 연금비용을 계산하였고, 또 해당 기간 동안 숨진 미군과 동맹국 군인 그리고 현지 민간인들의 피해를 집계하였다. 2019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6조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이 전쟁을 위해 무려 한국의 한해 GDP를 상회하는 막대한 금액을 소진한 셈이다.

  • 후세인과 빈 라덴은 제거했으나미국 경제를 바짝 따라잡은 중국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9·11 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을 성공적으로 제거했고, 그가 이끌던 알카에다는 거의 궤멸 상태에 빠졌다.  또한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던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처형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알 카에다 보다 더욱 흉악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가 출현했고, 이란은 후세인이 사라진 틈을 타 이라크를 비롯, 중동지역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동은 예전보다 더욱 불안정해졌으며, 중국은 더욱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은 전례 없는 고성장을 이룩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는 동안 중국의 GDP는 2001년에 비해 11배나 증가했고, 2001년 미국 GDP의 13%에 불과하던 중국의 경제 규모는 오늘날 미국의 70%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전성기 소련(현 러시아)조차 달성하지 못한 비약적 발전이다. 중국은 새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 주도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지칭) 등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영향력을 아시아 대륙에서 밀어내려고 한다. 이제 미국은 처음으로 자국과 대등한 경제력을 지닌 라이벌을 만나게 됐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중동에서 싸웠던 것일까. 어떻게 20년 동안 중동에 남아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원을 쏟아부은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지난 20년간 워싱턴 외교가를 지배한 사고를 들여다봐야 한다.

‘9·11’ 20주년, 미국보다 중국이 더 긴장그 이유는?

9.11테러 20주년을 맞았다. 미국은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주요 장소의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여러 가지 추모 행사를 준비하며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함에 따라 테러 활동이 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이뿐만 아니라 같은 수니파인 신장위구르자치구 독립 세력을 지원할 수도 있다.

중화권의 대표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탈레반 정권 출범에 중국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고 9월10일 보도했다.

  • 테러세력 준동, 일대일로에 타격 줄 수도: 일단 중국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테러세력들이 준동해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주변에서 각종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이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화됐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중국 노동자들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 10명 가까이 사망했다. 지난 7월 파키스탄 북부에서 중국 노동자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로 중국인 9명을 포함, 모두 13명이 숨졌다.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에서는 최근 중국인을 겨냥한 크고 작은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파키스탄에 진출한 중국 상인들은 최근 철수를 고민하고 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에서도 테러활동이 더 빈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키스탄에서 코로나19도 창궐하고 있다.
  • 파키스탄 진출 중국 상인들 철수 준비: 이에 따라 적지 않은 상인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파키스탄 라호르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상인 P씨(30)는 “중국으로 철수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 광물을 수입해 중국으로 보내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파키스탄에서도 테러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며 “중국인을 겨냥한 대규모 테러가 발생할 경우,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정부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탈레반 집권으로 테러세력이 일대일로 건설지역 주변에서 테러를 일삼을 경우,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과 탈레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9월9일 탈레반에 백신을 비롯, 총3100만달러(약 363억원)의 자금을 지원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탈레반이 아니다. 여러 테러 단체들이 탈레반의 성공에 고무돼 준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탈레반도 이들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세력 중 일부가 대(對)중국 테러 활동에 나설 수 있다.

●  탈레반이 확보한 미군 무기, 다른 테러세력에 팔 수도 : 중국이 걱정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미군 철수로 탈레반이 다량의 최신 무기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이를 알 카에다 등 다른 테러단체에 팔 수 있다.

역사의 종언과 자유주의적 패권

  •  냉전 종식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 시대 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됐던 냉전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치 체체의 최종단계이며 여기서 더 이상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확언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확산될수록 세계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제도가 우월하다는 확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보수적 정치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일극(一極)의 시대(Unipolar Moment)’가 도래했다”면서 “미국의 역할을 새로이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은 사라졌지만, 핵무기 등 비대칭 무기의 확산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이 깨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불량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가진 힘을 십분 발휘하고,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극으로서 세계의 경찰 역할을 100%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미국 정치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왼쪽)와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아프간 파병 이후 수그러든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

  • 자유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정치의 굳은 믿음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 아프간 전쟁

아프간·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한 관료는 “우리는 이제 제국이 되었으며, 현실은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진다(We are an empire now, and when we act, we create our own reality)”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의 한 기자가 부시 행정부 관료들이 현실에 기반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자 내뱉은 말이다. 굉장히 오만한 표현이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결정론적 역사관과 찰스 크라우트해머의 일방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은 세계를 자국의 모습대로 재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미국의 자유가 생존하려면, 다른 나라에서의 자유가 성공해야만 한다. 전세계에 자유가 확산되어야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의 정책은 “모든 나라들과 문화권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과 제도를 강화하여 세계에서 폭정(暴政)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과 독일을 민주화시켰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민주화시켜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자유의 증진”이라는 그의 믿음은 비단 부시 행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할 것 없이 미국 정계가 공유하고 있던 신조였다. 오바마 정부 또한 그러한 믿음을 어느 정도 계승했다. 그렇기 때문에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면서, 리비아와 시리아의 저항운동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입은 더 큰 혼란을 초래했으며 결국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으로 귀결됐다. 아무리 자금과 군사력을 투입해도 현지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미국민은 깊은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민의 자유주의적 패권에 대한 불만

  • IS 위협은 인정하지만 미국인의50%는 지상군 투입에 부정적

9.11 이후 중동 개입이 돈과 시간과 생명을 계속 희생하게 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스스로 되묻기 시작했다. 왜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해야 하는가? 왜 미국이 계속 이라크와 아프간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왜 미국이 세계 모든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가?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회의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킨 원동력 중 하나였다. 당시 트럼프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조속히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끝없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약속했다. 동맹국들은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한다고 우려했지만, 미국 국민들은 오히려 그러한 주장에 환호했다. 2016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70%가 차기 대통령은 외교 문제보다 국내문제에 치중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미국인 57%가 타국의 문제는 그 나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응답했다. 아울러 IS(이슬람국가)가 중대한 위협이라고 인식하면서도 미국인의 50%가 지상군 투입에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 역외균형론의 부상미국 정부와 국민의 최우선적 관심은 국내 안정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국제관계학) 스티븐 월트는 2018년 출간한 저서 『미국외교의 대전략(원제: The Hell of Good Intentions)』을 통해 지난 20년간의 미국외교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목적으로 삼은 외교전문가들이 그동안 위협을 부풀리고, 이득을 과장하고 동시에 비용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 외교전문가들이 자기들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들의 편견을 강화했고 따라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자유주의 패권을 반대한 트럼프 정부의 외교 방향은 맞았지만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이고 일방적이어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스티븐 월트 교수가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은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이다. 역외균형이란 어떤 세력도 독자적으로 유럽이나 아시아를 지배하지 못하게 동맹을 관리하고 적절한 순간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영국의 대외정책, 분할통치(Divide and Rule)를 차용한 외교정책이다. 다시 말해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고, 세력균형이 무너질 때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외교평론가 로버트 D. 캐플란도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는 2017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미국은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을 지양하고 해양국가로서의 책무만 수행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해양국가로서의 책무란 주요 해로(海路)를 보호하며, 동맹국들이 안전하게 에너지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는 미국이 사실상 거대한 섬나라로서 상당한 지리적 이점을 누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그는 ‘마르코폴로 세계의 귀환과 미국의 군사적 대응(The Return of Marco Polo’s World and the US Military Response)‘이라는 기고문에서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아프간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내륙에 깊숙이 개입하기보다 서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아우르는 지역의 연안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티브 월트 하버드대 교수(왼쪽)와 미국의 외교평론가 로버트 D. 캐플란

이제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연설에도 국제 문제 개입을 시사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바이든의 연설은 철저하게 미국 국내문제 극복에 초점이 맞춰졌었고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최우선적 과제로 명시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와 역사의 귀환

2021년 7월8일, 바이든 대통령은 8월31일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이라고 공표했지만 하루 앞당겨 8월30일 철군을 완료했다. 미국의 철군시한이 공식화되자 아프간 주요 도시는 순식간에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었고 아프간 수도 카불조차 미국이 철수를 완료하기도 전에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그 결과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탈레반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숙함은 미국의 위신을 실추시켰다. 미국 내에선 아프간 철수를 1975년 사이공의 함락에 비유하는 글들이 속출했고, 중국은 미국의 안보 공약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조롱하면서 대만을 더욱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동맹국들의 비난, 그리고 라이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8월31일 확신에 찬 어조로 “이 전쟁은 끝나야만 한다”며 자신의 결정을 변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을 침공했던 이유, 9·11 테러의 주모자가 제거된 이상 아프간에 계속 남을 이유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게다가 아프간을 통일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은 아프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며 이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책무는 2001년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의 위협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년의 세월을 결산하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에 대해서도 단호한 자세를 내비쳤다. 미국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국가안보의 핵심이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핵심이익이란 당연ㄹ히 중국을 상대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 프랑스 외무장관 아프간 철수로 미국 힘의 펀더멘털은 전혀 타격받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이후 미국이 중국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까. 미국이 현격히 약화된 것은 아닐까. 제3자의 시각이 흥미롭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아니라고 답한다. 프랑스 유력지 ’르 피가로(Le Figaro)‘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 힘의 펀더멘털은 전혀 타격받지 않았고, 미국은 오히려 국익을 더욱 정교하게 규정하여 여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1975년 사이공의 함락 때에도 사람들은 미국의 시대가 끝이 났다고 말했지만 1980년대 미국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9·11 이후 20년간 계속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미국의 자유주의적 실험은 막을 내렸다. 실험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이제부터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점차 격화하고 있는 미·중(美中)의 신(新)냉전이다. 그런데 과거 미·소(美蘇)의 양극체제와 달리 오늘날에는 유럽연합(EU)이나 러시아도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터키와 인도 등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복잡한 셈법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익숙한 광경이다. 

국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던 19세기 열강들의 시대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강대국간 경쟁의 판은 끝났다며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절대반지의 제왕에서 대체로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러 강국들 또는 예비강국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키플레이어로 활동하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가. 그야말로 ’역사의 귀환(The Return of History)‘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보자면 미국이 중동과 이슬람에 돈과 힘을 기울인 20년의 세월은 투자 대비 효과가 작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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