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공포정치 본격화..’총살·채찍·통행금지’

탈레반 아프간에 샤리아법(이슬람율법)으로 통치신음하는 아프간 경제

아프가니스탄을 완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오후 9시 이후 통행을 금지하는 등 공포정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8월19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마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긴급상황을 제외하고 오후 9시 이후 외출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발표했다. 탈레반 조직원들은 카불 시내에서 시민들을 ‘도둑’으로 몰며 잡아들이고 있으며, 일부는 폭행까지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데일리메일 등 외신도 탈레반이 카불공항 인근에서 채찍, 곤봉 등으로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을 폭행했다고 전했다. 또 탈레반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총을 발포하고 둔기로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인이 취재 중 폭행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거리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시내에선 청바지를 입은 청소년들을 보기 어려워졌고, 식당에선 호객을 위해 크게 틀어놓던 음악도 자취를 감췄다. TV 채널에서도 음악이나 인기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았다. 외신은 “탈레반이 아직 새 법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시민들이 1990년대 탈레반 정권 시절을 떠올리며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이후 총사면을 선포하는 등 공포정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지 주민들에 대한 억압이 하나둘 가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무장세력 탈레반 병사들이 8월18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M16 소총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원을 예고했지만 이미 현지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 폭스뉴스는 17일 아프간 북동부 타하르주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부르카(눈 부위를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의상)를 입고 나오지 않았다가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탈레반이 카불 장악 이후 처음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여성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며 여성들의 복직을 독려하고 여학생들의 복학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공포는 아프간을 떠나려던 주민들이 모인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에서도 나타났다. 탈레반은 아프간 탈출 시도를 막기 위해 주민들을 찾아가 채찍, 곤봉 등으로 여성과 어린이 등 주민들을 폭행했다. 그리고 해산하기 위해 총을 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시간 만에 최소 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더선’은 전했다. WSJ는 최소 3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입었다고 설명했다.
카불의 동쪽 도시 잘라라바드에서는 탈레반 통치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탈레반이 점령지에 꽂은 흰 깃발을 내리고 아프간 국기를 게양하고자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국기 게양 시위는 1919년 아프간이 14년 동안의 영국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독립기념일(매년 8월19일)을 하루 앞두고 치러졌다.

아프간 중부 바미안주에서는 1996년 숨진 시아파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파괴되기도 했다. 마자리는 하자라족 지도자로, 수니파인 탈레반과 대립했던 인물이다. 탈레반은 외국인이나 아프간을 떠나려는 현지인의 철수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실제 이행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유화 통치는 말뿐폭력 본색 드러내

8월15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 이후 아프간 탈출 인파가 수도 카불공항에 몰리면서 엿새간 12명이 사망했다고 탈레반이 밝혔다. 19일(현지시간) 탈레반의 한 관계자는 “15일부터 카불공항 안이나 주변에서 12명이 숨졌다”며 “총에 맞거나, (인파에) 밟혀서 사망한 경우 등”이라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합법적인 탑승 권한이 없는 시민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촉구했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후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했지만, 곳곳에서 길목을 막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등 시일이 지나면서 ‘탈레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아프간 전역에서 납치와 감금, 채찍질 같은 폭력이 일상화하고 있으며 반탈레반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최소 3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터키 등 인접국들은 카불공항을 이용할 수 없는 아프간 난민들이 가득하다.

8월19일(현지시간) 탈레반 조직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탈레반 고위급 관계자 와히둘라 하시미는 전날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은 결코 있을 수 없다”며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 토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아프간에 적용할 정치 체계에 대해 논할 계획도 없다. 아프간은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려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일하고 교육받을 권리와 복장에 대해서도 이슬람 율법학자가 결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소녀들이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여성들이 히잡이나 부르카를 착용할지 아바야(얼굴을 빼고 목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검은 옷)에 베일을 두를지는 율법 학자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무장단체 탈레반의 성향과 역사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이자 2021년 8월 아프간 공세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세력이 됐다.

  • 탈레반 명칭의 기원과 성향

‘탈레반’이라는 명칭의 기원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로, 아랍어 어원의 단어 ‘탈리브(طالب)’의 주격 복수 형태이다.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연유는 탈레반 조직은 파키스탄 북부 및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산재한 마드라사(مدرسة, 이슬람 신학교)]의 교육 체계를 이수한 신학생들이 내전(內戰)으로 인해 막다른 상황이었던 아프간의 내전을 무력으로 종식시키고 이슬람 신정(神政)국가 건설을 위해 결성한 단체였고 이들이 단체 이름을 ‘학생들’이라는 의미인 ‘탈레반’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일부 사용자들은 이들의 이니셜이 결핵의 영문 이니셜과 겹친 데서 착안하여 TB라고 부르고 있다.

탈레반은 대체적으로 파슈툰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이슬람 이전부터 있어왔던 파슈툰족 전통 교리인 파슈툰왈리(پښتونولي‎, Pashtunwali)와 자기들이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는다. 초기에는 비교적 상식적인 이슬람율법 적용과 엄정한 규율, 파슈툰족 내에서 팽배한 하자라족 혐오 감정을 등에 업고 오랜 전쟁과 기존 정부의 무능에 지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상당 지역을 점령하면서 빠르게 변해가더니 순식간에 반인륜적 집단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수니파 하나피파에 속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이비 종파라고 보면 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하나피파는 하나피파의 기원이 되는 아부 하니파부터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중 신체 일부를 노출해도 상관없다”라는 율법 해석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여성은 의사가 되어서도 안 되고 남성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안된다”는 사이비 파트와를 내렸다.

또한 파슈툰족의 관습법을 기록한 파슈툰왈리에는 ‘여성의 명예를 수호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여자를 죽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율법을 어기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저지하라’는 구절이 있다. 탈레반은 이 구절을 앞서는 것으로 판단해 파슈툰족 여자와 다른 부족의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불의로 여겨 여성을 죽이는 이른바 ‘명예살인’을 통해 이를 막는다.

  •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과 역사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은 인도 출신의 이슬람근본주의 신학자 셰이드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신학에서 출발한다.

‘마우두디는 여성이 시장이나 대학, 극장이나 식당에 오가며 남성 무슬림 눈에 보이는 것이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고 생각했었지요. 또한 예술, 문학, 음악, 영화, 춤, 화장은 부도덕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 이르판 무함마드

마우두디는 여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 밖으로 외출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이는 히잡으로 가리지 못한 손이나 얼굴, 혹은 눈 등이 부도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주장을 내세운 마우두디 자신은 뉴욕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같은 맥락에서 마우두디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정치 참여를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사상을 계승한 파키스탄 군부의 어용 정당 파키스탄이슬람회의의 지원에 힘입어 탄생한 탈레반은 무함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며,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구성멤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의 무자헤딘 출신과 마드라사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주입받은 전쟁고아들, 그중에서도 남부 파슈툰족 출신들이 모여서 결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많은 지방군벌 출신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처음에는 하자라족 완전 박멸을 주장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전국에 난립하는 군벌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가며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내전 상황을 종식시키고, 1996년 9월에는 수도 카불에 입성,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0%를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하며 정권을 수립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전세계, 심지어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경악할 초강경 샤리아를 펼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 2001년 9월11일에는 9.11테러를 일으킨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한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 미군과 이들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에게 축출당해 아프가니스탄 남부나 서쪽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로 도망을 갔다.

이슬람근본주의 신학자 아불 알라 마우두디
탈레반 창설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

2003년은 탈레반에게는 호기(好機)였는데, 이라크 전쟁이 터지며 미군의 주력이 이라크에 집중되어 한 숨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부동맹 출신의 하미드 내각은 단결이 잘 되지 않았으며, 무능하고 부패했기에 탈레반은 다시 세를 불려갈 수 있엇다.

이라크 내전 이전까지는 알 카에다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위험한 테러 단체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다에시와 그들의 하수인을 자처하면서 준동하기 시작한 보코 하람에 의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그들이 몰락한 2021년에도 무차별 테러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을 내 악명을 이어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계 탈레반

이슬람근본주의를 믿으며 무력을 사용하여 극단적 신정일치 종교사회를 창조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경전(꾸란과 샤리아)을 현실정치에 적용한다면서도 막상 꾸란의 뜻 자체를 비윤리적으로 써먹고 온갖 비도덕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일삼는 것이 이들의 실상이다.

주류 이슬람세력에게도 이들은 반쯤 이단시 당하며,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정권 구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사상은 태반이 왕정인 아랍 이슬람국가들에게 외면당했고, 이란은 시아파가 국교였기 때문에 수니파들을 멀리했다. 단순히 소원한 관계가 아닌 말 그대로 적대 관계에 있다.

무자헤딘들처럼 탈레반이 소련과 싸운 독립투사라는 잘못된 인식이 국내에서 횡행한 바 없지 않으며, 탈레반도 그렇게 주장하지만 소련과 싸운 것은 탈레반 총사령관 ‘믿음의 군주’ 물라 오마르 뿐이며, 탈레반 조직 자체는 무자헤딘 연립정부 결성 이후 파키스탄 부족 지역에서부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신생 조직이다.

1994년 내전에 빠진 무자헤딘 연립 정권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1996년 수도 카불까지 장악하는 등 아프간 영토의 80%를 수중에 넣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으나, 어디까지나 파슈툰족이 주류를 차지하는 아프간 남부의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제압했을 뿐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이 주류를 이루는 북부 일부는 끝내 점령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소수민족들이 무장한 세력을 통틀어 북부동맹이라고 불렀다. 2001년 당시 유엔 의석은 여전히 북부동맹 정부가 가지고 있었지만, 탈레반 정권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대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 직후 단교 당했다.

  • 은둔의 최고 지도자부터 외교, 군사 이끄는 2인자까지지도부 要人의 성향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권력을 다시 잡으면서 탈레반 지도부에도 국제적 관심이 쏠린다.

8월15일 BBC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현재 탈레반을 이끄는 사람은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인 하이바툴라 아쿤자다(60). 탈레반 근거지인 남부 칸다하르 태생으로 2016년부터 탈레반의 종교, 정치, 군사 등 주요 결정을 관장하고 있다.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지도자로 별명은 ‘믿는 자들의 리더’(Leader of the Faithful)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과거 아쿤자다의 강연 중 괴한이 그에게 총을 겨눠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게 대처할 정도로 강심장이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탈레반 측이 부인했다.

아쿤자다는 2016년 전임자 아크타르 모하마드 만수르가 파키스탄에서 미군의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하면서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이슬람 법학자 출신으로 정치·군사·종교 등을 관장하고 있다. 아쿤자다는 파키스탄의 모처에 은신하면서 아프간 탈환의 막후를 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쿤자다 밑에는 물라 무함마드 야쿱(31),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53), 시라주딘 하카니(48)라는 3명의 부지휘관이 있다. 셋은 각각 탈레반의 군사작전, 외교 및 대외소통, 군수물자 조달 및 재정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탈레반 창립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1960∼2013)의 아들 야쿱이다. 당초 아쿤자다의 전임자인 아흐타르 무하마드 만수르가 2016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을 때 탈레반 내부에서는 야쿱을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야쿱 본인이 자신이 너무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다며 아쿤자다를 지도자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후광 등을 감안하면 야쿱이 탈레반의 새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라다르는 탈레반 2인자로 꼽힌다. 1994년 모하마드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 운동을 창설한 바라다르는 미군에 대한 작전을 지휘하는 등 군사 전략자이자 최고 사령관 역할을 했다. 지난 7월말 중국 톈진에서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하며 중국의 지원을 촉구하는 등 협상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공동 창립했으며 오마르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었다는 평도 받고 있다. 2010년 아프간 정부군에 체포됐다 2018년 석방됐다.

그는 최고 지도자 아쿤자다와 전혀 다른 성향이다. 2020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 평화협상단을 이끌며 협상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등을 다니며 탈레반의 외교를 사실상 책임지며 대외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그는 2020년 탈레반과 미국 간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카니는 탈레반 산하의 무장단체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이다. 그는 과거 옛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무장투쟁인 반소련 게릴라전을 주도한 잘랄루딘 하카니의 아들이다. 나이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부터 탈레반과 협력했으며 이후 여러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

하카니 또한 2008년 수도 카불에서 일어난 호텔 테러에 연관됐다는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 당시 테러로 미국인을 포함해 총 6명이 숨지자 미국은 그에게 500만 달러(약 58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언어인 파슈토어로 ‘학생’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오마르는 19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각 군벌끼리 치열한 내전을 벌이자 이슬람 전통 교육기관 ‘마드라사’ 소속 신학생 2만5000명을 주축으로 1994년 탈레반을 설립했다.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은 오마르를 ‘우리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했다.

블랙호크 등 100조원 무기 탈레반의 손에아프간 정부군은 저항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 후폭풍또다시 내전 가능성 등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도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지원한 블랙호크 헬기 등 100조(兆)원 상당의 무기도 탈레반 손에 들어가 위험도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17일 브리핑에서 “우리 군사 물품 상당수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다. 탈레반이 노획한 군사 물품은 미국이 아프간 정부군에 제공한 830억달러(약 97조원) 상당의 무기라고 AP통신이 전했다.

17일(현지시간) 한 탈레반 대원이 로켓추진수류탄(RPG)을 어깨에 메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정부 ‘2인자’였던 암룰라 살레 제1 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대통령 대행을 자임하면서 아프간을 함락한 탈레반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다. 아프간을 재장악한 탈레반은 국제사회에 밝힌 공식 입장과는 달리 시위대에 발포, 2명을 사망하게 하는 등 공포정치를 자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아프간이 다시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저항을 외치는 부통령 암룰라 살레카불 북동부 판지시르주에 탈레반 병력 집결결사 항전

암룰라 살레 부통령은 이날 “아프간 헌법에 대통령 부재, 도망, 유고 등의 상황에서 제1부통령이 임시 대통령이 된다고 명시돼 있다. 내가 합법적 대통령 대행”이라고 선언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전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국외로 도피했다. 살레 부통령은 “아프간인들은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다”며 “아프간이 과거 월남전 당시 베트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 (아프간 국민은) 탈레반에 대한 저항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카불에서 북동부로 65km 떨어진 판지시르주(州)를 거점 삼아 탈레반에 저항할 지도자들을 모으고 있다. 판지시르는 페르시아어로 ‘다섯 사자’라는 의미로,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요새로 꼽힌다. 실제 살레 부통령을 지지하는 부대는 최근 아프간 수도 카불 북쪽 파르완주(州)의 주도 차리카르를 탈환한 뒤, 판지시르주에서 탈레반과 전투를 벌였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차리카르는 아프간 ‘제4의 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와 카불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는 암룰라 살레 아프간 부통령

이와 함께 우즈베크족 군벌 출신 압둘 라시드 도스툼 전 부통령이 살레 부통령에게 호응해 판지시르로 1만명의 부대를 출동시키면서 반(反)탈레반 세력이 모이고 있다. 도스툼 전 부통령은 반탈레반 무장세력의 주축을 이뤘던 ‘북부동맹’의 핵심 지도자다. 2001년 미국이 탈레반과 전쟁을 시작할 때 앞장서 미군을 도왔다. 미국 정치 매체 ‘더 내셔널뉴스’는 아프간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탈레반에) 항복을 거부한 일부 아프간 특수부대 지휘관이 저항 세력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에 항전하려는 세력들의 움직임도 보다 조직화되고 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국외 도피 후 자신을 합법적인 대통령 대행이라고 칭한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은 트위터에 “국기를 든 사람에게 경례해 나라의 존엄을 세우자”며 탈레반에 대한 저항을 독려하고 나섰다.

카불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100㎞밖에 안 떨어진 판지시르주는 반(反)텔레반 움직임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천혜의 요새’로 탈레반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이곳으로 탈레반에 쫓긴 아프간 군인 등 저항 세력이 속속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살레 제1부통령을 비롯해 야신 지아 전 아프간군 참모총장, 아프간의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로 판지시르 관리를 책임지는 아흐마드 마수드 등도 판지시르에 모여 탈레반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마수드는 전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현재 판지시르 골짜기에 무슬림 반군 조직 무자헤딘 전사들과 함께 있다”며 “탈레반과 싸운 아버지의 뒤를 따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동부 판지시르주(州)에 집결한 아프간 정부군의 모습.

현재 판지시르에 있는 병력은 2000~2500명으로 알려졌는데, 뉴욕포스트는 병력 규모를 6000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아프간 정부는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되기 전 무기 등 군수물자들을 판지시르로 옮겨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출신인 모하마드 자히르 아그바르 주(駐)타지키스탄 아프간 대사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판지시르가 저항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주재 아프간 대사관 무관이었던 아흐마드 무슬렘 하야트는 뉴욕포스트에 “절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겠다”면서 “판지시르인들은 절대 테러리스트에게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기 전에 목숨을 던질 것”이라 말했다.

  • 카불·아사바다드·잘랄라바드·쿤나르등서 탈레반 시위아프간 속 탈레반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아프간전(戰)의 종전을 선언했지만, 아프간 내부에선 ‘반(反) 탈레반’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프간 독립기념일을 맞은 이날 수도 카불을 비롯해 동부 도시 아사다바드와 잘랄라바드, 쿤나르 주(州) 등 전국 곳곳에서 아프간 국기를 든 시민이 탈레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수도 카불에서는 시위대가 “우리의 국기는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8월19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국기를 든 시민이 탈레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른 지역의 시위에서는 참가자들이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색 깃발을 찢기도 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아사바다드에 사는 주민 모함메드 살림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수백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웃 한명이 합세하는 것을 보고 나도 집에 있는 국기를 들고나왔다”고 말했다.

  • 탈레반, 시위대 향해 총격 가해 사상자 다수 발생

이 과정에서 탈레반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희생자가 발생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잘랄라바드에서 4명 이상이 탈레반의 총격에 의해 희생됐다. 쿤나르주에서는 탈레반이 국기로 덮인 차량을 향해 총을 쏘면서 3명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전날인 17일에도 잘랄라바드에서 국기를 앞세운 시위가 벌어졌고 탈레반의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탈레반은 18일 동부 잘랄라바드에서 아프간 대형 국기를 들고 탈레반 퇴진을 요구한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2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고 스페인 EFE통신이 보도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중부 바미안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됐다. 마자리는 과거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알카에다, IS(이슬람국가) 등 테러 세력이 아프간에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극단주의 부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IS 등 이슬람 극단 단체 소속 대원 상당수가 카불에 진입했으며 아프간 내 미군 기지 등에 수감됐던 알카에다 핵심 인사들은 지난 주말 탈레반에 의해 풀려나기도 했다.

  • 월급만 타먹는 유령 군인아프간군, 탈레반에게 속수무책NYT “100조원 들여 키웠으나 독자적으로 싸울 준비 안돼

미국이 지난 20년간 약 100조원을 들여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군이 독자적인 전투가 불가능한 오합지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8월14일(현지시간) “아프간 정부군을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강한 군대로 키우려 한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하자 탈레반은 총공세에 나섰고, 아프간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주요 도시들을 내줬다. 아프간 서부 최대 도시인 헤라트를 비롯해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주도 34곳 중 18곳이 탈레반에 장악됐다. 수도 카불도 미군 완전 철수 후 한 달 내에 탈레반에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의 장부상 숫자는 탈레반 반군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지난 7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냔 4월 기준 임금을 받는 아프간 정부군(ANDSF)은 30만699명이다. 반면, 탈레반 반군의 핵심 전투대원은 6만명으로 추산되고, 각 지역에 퍼져 있는 대원과 지지자들을 다 포함해도 20만명을 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의 3대 도시 헤라트의 거리에서 8월13일 탈레반 반군 무장대원들이 군용 차량에 올라가 있는 모습. 아프간 정부군은 수주일 동안 반군에 포위됐던 이곳에서 12일 철수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프간 정부군은 연간 50억~60억달러(약 5조8000억원~7조140억원) 규모의 예산을 사용한다. 미국이 ‘아프간군 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750억2000만달러(약 87조6983억원)에 달한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돈은 830억달러(약 97조270억원)라는 분석도 있다.

병력과 물자에서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압도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정부군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NYT는 아프간 정부군에 유령 병사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임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병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의 실제 병력은 등록된 숫자의 6분의 1 수준으로 탈레반 반군 숫자보다 훨씬 적다는 분석도 있다. NYT는 “정부군 장교들도 실제 병력이 장부상 인원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아프간 정부군이 미군 철수를 앞두고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미국이 철군을 발표했을 때 탈레반은 동력을 결집하기 시작했지만 아프간 정부군 안에서는 정부를 위해 싸우는 것이 목숨 걸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졌다”고 전했다. 미국 민간싱크탱크 CNA의 조너선 슈로든 박사는 “탈레반의 결속력이 아프간 정부군보다 훨씬 강고하다”고 했다.

탈레반이 지난 몇년간 안정적인 자금줄을 만들고 전략을 가다듬으면서 전투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엔은 탈레반 연간 수익 규모를 3억~16억달러(약 3500억~1조 8700억원)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60%가 마약거래에서 나온다. 탈레반은 최근 몇 년간 아프간군 시설들을 접수하며 미군이 아프간군에 지원한 무기와 장비도 확보했다.

탈레반의 전략이 정교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1994년 남부 카다하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탈레반은 남부와 농촌지역을 장악하며 세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부와 북부 대도시를 먼저 공격했다. 반(反)텔레반 정서가 강하거나 지역군벌의 영향력이 커 자신들에게 불리한 지역부터 기습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탈레반 대원들은 사복 차림으로 민간인과 뒤섞여 있다가 정부군을 공격한 뒤 은신처로 피하는 게릴라 전법도 구사한다.

유가·쌀값 치솟고 실업자는 쏟아져신음하는 아프간 경제

탈레반 점령이 경제에 직격탄월급 못 받아 끼니 걱정 커져

탈레반이 8월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순찰을 강화하면서 길거리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아프간인(人)들이 집집마다 숨어 지내면서 경제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탈레반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피란민 수천 명이 카불 국제공항으로 몰려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후 일주일 사이에 많은 아프간인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어졌다. 은행은 여전히 문을 닫았고 많은 사람들이 저축계좌에 접근할 수도 없다.

  • 금반지·귀걸이조차 못 팔아아프간 화폐가치 뚝뚝 하락

식료품가격은 폭등했다. 밀가루·휘발유·쌀 가격은 며칠 사이에 10~20% 올랐다. 월급 260달러를 받아 아내와 자녀 4명을 부양했던 전직 경찰관은 “석 달째 임대아파트 렌트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아내 반지와 귀고리라도 팔아보려고 했지만 금시장이 폐쇄됐고 구매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미국이 아프간 외화자금을 동결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 지원을 중단하며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아프간에 달러화가 부족해졌다. 이에 따라 아프간 화폐인 아프가니 가치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미국달러당 아프가니값은 지난달 말 79.82아프가니에서 이달 22일 86.02아프가니를 기록했다. 달러화 가치가 이처럼 한 달 새 8% 높아진 만큼 아프가니 가치는 추락했다. 일부 아프간 젊은 층은 달러화 대안으로 가상화폐를 매입해 환율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으로 쓰기도 했다.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숨어 있는 한 전직 정부 관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정부만 추락한 게 아니라 월 200달러를 받던 수천 명의 사람들도 추락했는데, 정부에서 두 달째 월급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머니에게 약이 필요하고 아이들과 가족에게 음식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민간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국제기구의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도 끊긴 상태다. 아프간에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중산층의 충격이 커지고 있다. 사실상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 아프간 경제를 유지하기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 국제원조 끊겨 경제회복 요원탈레반 vs 저항군 내전도 한몫

탈레반이 정치적 안정을 통해 아프간 경제까지 정상화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탈레반 나라’를 인정받는 것과 별개로 반(反)탈레반 저항세력과의 내전(內戰)도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거침없이 진격해 카불에 입성했지만 북부 판지시르 계곡 등을 반탈레반 저항세력에 내줬다.

아프간 저항세력 지도자인 아흐마드 마수드(32)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알아라비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소련에 맞섰으며 탈레반에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결사 항전 의지를 보였다. 그는 1980년대 소련에 대항해 반군을 이끈 사령관으로서 아프간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다. 마수드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에 협상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탈레반의 공격에 맞설 준비가 됐다고 했다. 또한 내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에 대비해 국제사회의 지지도 호소했다.

또한 외신은 탈레반의 2인자이자 실질적 지도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10여년 만에 아프간으로 돌아왔다며 “바라다르의 복귀는 새 통치체제 발표 임박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탈레반 최고지도자는 물라 하이바툴라 아쿤자다이지만, 가장 대중적 지도자는 바라다르가 꼽힌다. 바라다르는 1994년 탈레반을 창설한 4명 중 1명으로 오사바 빈 라덴의 측근이었다. 2020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첫 아프간·탈레반 평화협상 당시 탈레반을 대표했다. 지난 7월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정식 회담을 하기도 했다.

바라다르는 앞으로 곧 차기 정부 체제에 대한 구상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탈레반 지도자뿐만 아니라 아프간 관료와 정치인들이 정부 구성안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또 탈레반의 대외 홍보 창구인 문화위원회는 ‘한국 등으로부터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받아 경제협력을 희망한다’는 취지를 전하기도 했다.

바이든 영원한 동맹없다발언 후 들끓는 책임론에 최대 위기

성급한 철군 비판에 후회 없다아프간 철군 오판여론 급속히 악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개입 확대를 지지했던 전임 대통령들을 비판하며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분쟁 속에 무기한 머물면서 싸우는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동맹’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방점을 찍은 발언으로, 한국 등 다른 동맹국을 향해서도 ‘영원한 동맹은 없다’는 경고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슬람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직후인 8월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프간 사태를 주제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미군의 성급한 철수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초래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여름 휴가 도중 다급히 백악관에 복귀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우리 임무는 국가 건설이 아니었다”며 “유일하고 중요한 관심사는 미국 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아프간을 침공해 주범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으니 애초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1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 아프간서 철군 왜 했나“20년간 중동에 매달리다 급부상 못막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아프간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배경엔 여러 개인적·정치적 함의(含意)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40년 넘게 상원 외교위원장, 부통령을 지내는 동안 보수 진영 중심의 해외 군사 개입론에 공감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장기화하는 중동 전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많이 피력했다.

미국 정계와 학계는 9·11 테러 이후 20년간 미국의 에너지를 빨아들인 중동의 대(對)테러 전쟁이 국내외에서 각종 문제를 낳았다고 보는데,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먼저 중동전 와중에 중국의 경제 부상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의 서민·중산층이 붕괴했다는 점이다. 최근 10년 새 폭증한 미국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문제도 미국이 중동에 정신이 팔려 뒷마당인 중남미 국가 관리를 소홀히 한 여파이며,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의 득세도 그 연장 선상에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인 가정사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였던 장남 보 바이든이 2008~2009년 이라크전에 자원 참전한 뒤 무공훈장까지 받았으나, 2015년 45세에 돌연 뇌암으로 사망했는데 이후 바이든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들이 이라크 복무 때 독성 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란 의심을 갖게 되면서 철군주의로 완전히 돌아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얼마나 많은 미국 젊은이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해외 관여주의자인 외교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높은 중서부 러스트 벨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혈투 끝에 당선됐다. 취임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 서민지원 정책에 전념하며 “나는 아프간전을 치르는 네 번째 대통령이지만, 다섯 번째 대통령에겐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에선 이번 아프간 사태 충격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성급한 철군 방식을 비판하면서도 ‘철군 자체는 옳았다’는 여론이 많다. 경제지 ‘포브스’는 16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쏟아부은 2조2600억달러(약 2654조원)란 천문학적 전비(戰費)는 20년간 매일 3억달러(약 3500억원)씩 쓴 셈”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군 2500여 명과 협력업체 소속 4000여 명 사망, 상이군인 수만 명에 대한 보상·지원에 5000억달러(약 587조원)의 청구서도 추가로 날아들고 있다.

  • 들끓는 책임론에 바이든 최대위기아프간 철군 오판여론 급속히 악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아프간 철군 상황을 두고서 바이든 대통령 책임론이 들끓는 가운데 바이든 정부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8월16일(현지시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46%로 지난 1월 취임 후 실시된 주간 여론조사 결과 가운데 가장 낮게 나타났다. 그보다 사흘 앞선 13일 조사에서 지지율 53%를 기록했는데 아프간 사태를 거치며 7%포인트 급락했다.

특히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아프간 철군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13∼16일 유권자 1999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9%가 바이든 대통령의 미군 철수를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 같은 조사에서 미군 철수를 지지한다는 응답 69%보다 무려 20%포인트가 빠졌다. 반면 철군 결정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37%로, 지난 4월 조사 때의 16%보다 21%포인트 증가했다.

철군 시점이나 방식, 결과는 물론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까지 ‘아프간 지도부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불거지며 여론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오판(誤判)을 꼬집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보기관들이 지난 7월부터 아프간 정부가 수도 카불에서 버틸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등 비관적 내용을 보고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철군 일정을 고수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공격을 막을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카불이 함락되는 것은 물론 아프간 정부군이 무너질 위험성도 높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다고 NYT는 전했다.

엇갈린 국제사회·EU “탈레반 합법정부 아니다”, ·주권 존중해야
탈레반 실질적 지도자 아프간 입성외신들 새로운 통치체제 발표 임박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합법정부 인정 여부를 두고 국제사회가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서방 국가는 과거 비인도적 행적을 문제 삼으며 바로 정부로 간주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중국, 러시아 등은 탈레반에 긍정적이다. 혼란 속 대규모 철수가 이뤄지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이들은 대사관도 정상 운영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이 주도하는 아프간 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 구성원 등 극단주의자들이 탈레반 승리에 환호하며 카불 시내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등 극단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8월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부르이 국제공항 외곽에 수백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다. 전날 이곳에서 필사적으로 국외 탈출을 시도하는 군중이 몰려들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의 합법적 집권세력으로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시기상조”라며 “탈레반이 전세계에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나아가려 하는지 보여주기에 달렸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등도 탈레반이 국제적 인권 기준을 준수하고, 난민 증가에 책임감 있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성명에서 “탈레반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해야 한다”면서도 “탈레반은 국제인도법에 따른 의무를 존중해야 하고, 난민과 이주민 증가에 대처해 이웃 국가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카리쿠키 주유엔 영국 부대표는 “탈레반이 기본적인 인권을 계속해 침해한다면 아프간인과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정당하게 선출된 민주정부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대체한 공인된 테러단체”라며 “아프간 정부로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반면 러시아·중국은 탈레반과의 협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 뉴스위크는 러·중 외교 당국자들이 탈레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통화도 마쳤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지르노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16일 카불 분위기에 대해 “평화로운 상황이며, (탈레반은) 문명화된 방식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아프간의 주권과 국가 내 모든 파벌을 존중한다”며 탈레반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 안보전문매체 ‘저스트시큐리티’는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는 데는 직접적인 양자 관계를 유지하거나, 국제기구를 통한 소통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며 “(서방국들은) 국제법과 외교의 영역에서 아프간에 다양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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