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 진화 팔걷은 한국은행, 증권사 RP 6조 규모 매입

시장에 유동성 공급 속도적격 담보증권에 은행채 등 추가11월부터 3개월간 한시 적용
은행권 최대 29조원 확보 효과

한국은행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의 자금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6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은행이 대출이나 차액결제 거래를 위해 한국은행에 맡기는 담보증권으로 은행채와 공공기관채가 한시적으로 추가됐다.

한국은행은 10월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약 6조원 규모의 RP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한은은 통화 조절 수단으로서 RP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하는데, 이례적으로 증권사 등의 자금난을 고려해 반대로 RP를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RP 매입은 유동성을 지원하는 만큼, 긴축 기조와 상충한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한은은 “이번 조치는 금융 안정을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며 “RP 매입을 통해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흡수되므로 현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은은 은행채와 9개 공공기관 발행 채권을 한은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및 공개시장운영 RP 매매 대상 증권에 포함하기로 했다. 기간은 다음 달 1일부터 2023년 1월 말까지 3개월이다.

춘천 레고랜드코리아 리조트의 모습

적격담보증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인정해주는 담보물이다. 현재에는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각종 한은 대출과 관련된 담보증권에 국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 정부보증채,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이 포함돼 있는데 여기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9개 공공기관 발행 채권이 포함된 것이다. 은행채의 대규모 발행이 지속될 경우 회사채, 여전채 등 여타 신용채권 수요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은행채가 적격담보증권에 포함될 경우 보유 중인 은행채를 담보로 한은에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이런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 한은은 이를 통해 국내 은행들이 활용할 수 있는 추가 고유동성 자산 확보 가능 규모가 최대 29조원 정도일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또 금융기관 간 차액결제 시 결제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하던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제공 비율의 인상 계획도 2023년 2월에서 5월로 3개월간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담보 비율 인하가 연장되면 금융 기관들은 국고채와 통안채 등 고유동성 자산을 보유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된다. 한은 입장에서도 시장에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고, 자금경색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은은 이를 통해 금융 기관의 담보 부담이 7조5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 대형 증권사 사장단도 긴급회의 “ABCP 물량 업계 내 소화합의5대 금융지주 채안펀드 적극 참여강원도 보증채무 12월까지 상환

대형 증권사들은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생긴 증권업계 유동성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물량을 업계 내에서 소화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메리츠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하나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사장단은 이날 금융투자협회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이같이 뜻을 모았다. 업계는 후속 논의를 통해 세부 실행 방안과 지원 규모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현재로서는 각 회사별로 500억∼1000억원 수준으로 자금을 갹출,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ABCP를 매입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도 채권·증권시장 안정펀드(채안·증안펀드) 재조성 사업 등 다양한 시장 안정 조치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5대 금융지주 부사장들은 이날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주재로 열린 시장안정점검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기업어음(CP)이나 전자단기사채, 은행채 발행을 축소하고 단기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10월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베트남 광닌성 하롱시에서 열린 제17회 동아시아지방정부 관광연맹(EATOF) 총회 참석차 출국한 김 지사는 레고랜드 쇼크 사태 확산에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한편, 강원도는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보증채무 2050억원을 올해 12월까지 전액 상환하기로 했다. 정광열 강원도 경제부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12월15일까지 보증채무 전액(2050억원)을 상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강원도는 내년 1월29일까지 보증채무를 전액 상환하겠다고 10월21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자 상환 시기를 앞당긴 셈이다.

돈맥경화한국은행, 11월 빅스텝 대신 베이비스텝 밟나

10BSI 20개월 만에 최악자금시장 급속 경색 부담연준 금리 결정에 촉각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국내 자금시장 경색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0월26일 금융시장에선 한은이 11월24일로 예정된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대신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한은이 치솟는 물가와 원·달러 환율에 대응해 이달에 이어 다음달 연속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가 끝난 뒤 ‘이번 유동성 국면에서 빅스텝을 위한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화정책의 기본 전제가 바뀐 것은 아니다”며 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에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소비와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긴축 속도를 늦출 것이란 기대가 퍼지고 있다. 다음달 2일 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입장 변화가 나타나면 한은 역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한은 금통위에서도 빅스텝에 ‘반기’를 든 금통위원이 7명 중 2명이었다. 강민주 ING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에서 성장을 지원하는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시사할 수 있다”며 금통위가 다음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역시 26일 내놓은 ‘대내외 여건 변화와 향후 물가 흐름’ 보고서에서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은은 “내년 국내 성장세가 글로벌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수요 측 물가 압력이 약화할 것으로 예상돼 근원물가 오름세가 다소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발표된 10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1년8개월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전산업 BSI는 76으로 전달보다 2포인트 내렸다.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하락세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국내 자금시장 경색도 무시 못 할 변수다. 이 총재는 이날 시중은행장들과 만찬 회동을 하고 자금시장 상황을 논의했다. 한은은 27일 금통위 정기회의를 열고 채권시장 안정 방안의 일환으로 은행채 등 적격담보증권 확대와 은행 간 차액 결제 담보비율 인상 연기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집값 둔화, 빅테크 실적악화고개드는 연준의 속도조절론

집값 상승률 35년 만에 최저구글·MS 실적도 기대이하채권시장까지 유동성 경색연준서도 경기 우려 목소리 나와주담대 금리 7% 넘어

주택 가격 상승세 둔화와 소비 위축, 기업 실적 악화 등 미국의 경기침체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40여 년 만에 최악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린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긴축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는 이른바 ‘피벗(정책 방향 수정)’ 가능성이 Fed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Fed가 11월에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겠지만 12월엔 0.50%포인트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기대이다.

  • 꼬꾸라지는 경기지표

미국 주택가격 상승률은 3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S&P다우존스인덱스가 10월25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주택가격지수는 2021년 같은 달 대비 13% 올랐다. 전월 증가율(15.6%)에 비해 2.6%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1987년 후 가장 감소폭이 크다. 크레이그 라자라 S&P다우존스인덱스 상무는 “미국의 주요 20개 도시 모두에서 상승세가 둔화했다”고 말했다.
대표기업들의 실적도 시원찮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 3분기 매출 690억9000만달러(약 99조59억원), 주당 순이익은 1.06달러(약 1518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과 순이익 모두 시장 추정치에 못 미쳤다. 경기침체 우려로 광고주들이 디지털 광고 지출을 늘리지 않은 탓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전체 실적은 월가 예상에 부합했지만 클라우드 매출이 3분기 35%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36.9%)보다 낮았다. 이 여파로 알파벳과 MS는 시간외거래에서 6%대 하락세를 보였다. 26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하락 출발했다.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미국 국채금리가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8월 연 2.6% 정도였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근 연 4%대로 치솟았다. 블룸버그는 이날 “미국 재무부가 국채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20여 년 만에 시장에 개입해 국채를 사들이는 ‘바이백’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 모기지은행협회(MBA)는 10월15~21일 3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의 평균 금리가 전주보다 0.22%포인트 오른 연 7.16%를 기록했다고 26일 밝혔다. 2001년 이후 최고치다.

  • 커지는 연준의 고민

8월 잭슨홀 미팅 이후 ‘일시적인 경기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보인 Fed 내부에서도 경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는 최근 “정책 금리를 너무 빠르게 올려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속도 완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도 “금리 인상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도 이점이 있다”고 했다.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쳤다는 분석도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싣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발표되는 미국 3분기 개인소비지출(PCE) 증가율을 2분기의 절반 수준인 1% 정도로 예상했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8.2%로 8월(8.3%)보다 둔화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기준 연방기금(FF) 금리선물 시장에서 Fed가 12월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51.8%로 전날 43.1%보다 높아졌다. 반면 0.75%포인트 인상은 전날 54.9%에서 45.8%로 떨어졌다. 폴 젬스키 솔루션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기 둔화를 보고 있는 Fed가 최소한 시장 전망 이상으로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긴축속도를 늦추면 다시 인플레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 만큼 Fed의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대니얼 핀토 JP모간체이스 대표는 “더 완화적인 통화 정책으로 조기에 돌아서는 것은 1970~1980년대와 같은 실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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