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낵, 영국 역사상 첫 非백인·인도계·최연소 총리

210년 만에 ‘42세 최연소 총리수낵, 금융계서 2015년 정계 입문재무장관 때 코로나 지원책, 팬데믹 시대 국민 인기 높여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이자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 총리가 탄생했다. 리시 수낵(42) 전 영국 재무장관이 10월24일(이하 현지시간) 리즈 트러스에 이어 영국의 새 총리가 됐다. ‘첫 비백인 총리’, ‘210년 만의 최연소’, ‘첫 힌두교도 총리이자 영국 옛 식민지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 등 다양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트러스 총리의 퇴진에 따라 실시된 집권 보수당 대표 선거 입후보에 필요한 당 소속 하원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를 단독 확보해 새 총리로 확정, 25일 제57대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보수당의 수장이자 영국 총리가 된 그의 앞길에는 난제가 적지 않다.

영국 경제 바로잡고, 당을 통합하고 나라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출사표

수낵은 23일 “영국의 경제를 바로잡고, 당을 통합하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수낵은 이날 심야에 유력 경쟁자였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승리를 사실상 확정했다. 존슨 전 총리는 불출마 성명에서 “출마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정당이 통합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정치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9월 보수당 당대표 선거 결선에서 최종 2위를 차지한 수낵 총리는 트러스 전 총리가 역대 최단기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나면서 거꾸로 최단기 재도전 성공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10월25일(현지시간) 영국 제57대 총리에 취임한 리시 수낵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수낵 총리는 후보등록 마감 시한인 23일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10시) 당 소속 하원의원(357명) 중 과반(179명)을 넘는 지지를 확보해 단독 입후보했다. 영국 BBC 방송은 수낵 총리가 후보등록 마감 30분전 의원 193명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경쟁자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는 100명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해 입후보에 실패해 당원 투표 없이 수낵의 승리가 확정됐다. 보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동료 하원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23일 “이번 보수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도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인 이날 오후 2시 직전 불참 의사를 밝혔다. 당대표 경선을 주관한 보수당 ‘1922 위원회’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은 “대표 경선에 참여하기로 한 후보는 단 한 명이었다”며 “리시 수낵 전 장관이 새 보수당 대표가 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영국 역사에 총리가 등장한 1721년 이후 3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비(非)백인 총리가 탄생하게 됐다. 수낵은 또 1980년 5월생으로, 1812년 만 42세 생일 다음 날 취임한 로버트 젱킨슨 총리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금융시장 수낵 효과국채금리 급속 안정트러스 감세안 폐기할 듯

리시 수낵이 25일 제57대 영국 총리로 정식 취임하면서 “전임 정부의 실수를 즉각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경제통’ 수낵 총리의 취임에 영국 금융시장은 국채금리 하락 등 안정세로 화답했다. 그는 최근 경제 사령탑에 오른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을 당분간 계속 기용하며 영국 경제 되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단독 출마해 영국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수낵은 이날 오전 11시께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했다. 그는 9월8일 왕좌에 오른 찰스 3세가 취임을 승인한 첫 총리가 됐다.

국왕 접견 이후 수낵 총리는 총리실 앞에서 취임 연설을 통해 대대적인 정책 노선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성장률을 제고시키려고 내놨던 전임 트러스 내각의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몇 가지 실수가 저질러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쁜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실수는 실수”라며 “전임 정부의 잘못과 실수를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낵의 당선이 확정된 24일 시장은 안도감을 나타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서는 영국중앙은행(BOE)이 연 2.25%인 기준금리를 올해 말까지 연 5% 미만으로 올리는 데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트러스가 내각을 이끈 지난주까지만 해도 영국 기준금리가 연 6%대까지 치솟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하향 조정된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회사를 거쳐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통’ 수낵이 안정적으로 경제정책을 조정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수낵은 트러스 정부의 붕괴를 초래한 ‘감세 의제’와는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400억파운드(약 64조원)에 달하는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그가 국방예산 감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회사 MUFG의 리서치헤드인 데릭 할페니는 “수낵이 영국 국정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며 “그의 당선으로 영국의 정치적 불안이 해소된 것은 확실히 긍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영국 국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 마감하며 안정세를 되찾았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31%포인트 하락한 연 3.74%를 기록했다. 30년 만기 국채도 0.312%포인트 떨어진 연 3.749%로 장을 마감했다. 트러스 내각이 450억파운드 감세안 등 ‘미니 예산’을 발표해 시장에 혼란을 불러오기 직전인 9월22일 이후 최저치다.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4.247%를 기록해 2008년 6월 이후 최고치를 찍은 것과 대비된다.

수낵 총리 취임버킹엄궁서 찰스 3세 알현

리시 수낵이 25일 제57대 영국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취임에 앞서 수낵은 이날 오전 11시께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했다. 수낵은 신임 총리로서 국왕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국왕과 악수했다. 이른바 ‘키싱 핸즈’라는 전통적 인사법이다. 이후 찰스 3세가 수낵 총리에게 새 내각 구성을 요청하고 취임을 승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앞서 수낵 총리는 당선 직후 TV 연설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2분 남짓한 발언을 통해 그는 “영국은 위대한 국가이나 심각한 경제적 문제에 직면했다”며 “우리는 안정과 통합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우리 당과 우리 국가에 가장 우선순위로 둘 것”이라고 했다.

리시 수낵 신임 영국 총리가 10월25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과 악수하고 있다. 찰스 3세는 리즈 트러스 총리의 사직을 수리하고 수낵을 총리로 공식 승인한 뒤 새 내각을 구성할 것을 요청했다.

찰스 3세는 수낵 총리를 만나기 전에는 리즈 트러스 총리의 사직을 수리했다. 트러스는 이날 오전 9시 마지막 내각 회의를 한 뒤 총리실 밖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그는 취임 50일 만에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로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9월23일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감세안을 발표해 영국 국채금리 급등, 파운드화 급락 등 금융시장에 충격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책(失策)에 대한 사과 없이 “감세를 통한 성장이 옳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9월6일 그의 취임을 승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와 트러스 총리의 퇴임으로 영국의 국왕과 총리가 50일 만에 모두 바뀌는 상황이 됐다.

수낵 내각의 특징은친구를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트러스·존슨 측근 재무·외무·국방 등 대거 유임당 균열 메우고 연속성 확보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5일 취임 후 국정운영 안정과 당내 통합에 초점을 둔 포용 인사를 단행했다. 제러미 헌트 재무, 제임스 클레벌리 외무, 벤 월리스 국방 장관 등 리즈 트러스 내각의 핵심 장관이 대거 유임됐다. 헌트 장관은 수낵계이지만, 클레벌리와 월리스 장관은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당내 반대파까지 아우르는 조각(組閣)으로 당내 균열 수습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러스, 존슨 전 총리 정부 출신의 장관을 적극적으로 재기용해 전문성과 지속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만 일부 핵심 요직은 남성들이 사실상 독차지했다는 점, 문제 행위를 저지르고 물러났던 내무장관을 재기용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 유력지 ‘더타임스’는 25일 수낵 총리가 발표한 내각 명단에 대해 “친구를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뒀다”고 총평했고 ‘가디언’은 “경험을 갖춘 인사를 최고직에 복귀시키는 것을 추구한 인사”라고 전했다. 실제로 수낵 총리는 제러미 헌트 재무, 제임스 클리버리 외무, 벤 월리스 국방 장관 등 트러스 정부 출신 핵심 장관을 대거 유임했다.

헌트 재무장관의 경우 트러스 총리 재임 기간 순식간에 무너진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고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임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았다. 또 클리버리, 월리스 장관 기용은 당내 존슨 전 총리 지지세력을 포용하려는 의도라고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분석했다. 트러스 정부에서 유임된 주요 인사는 모두 13명(직책 이동 포함)에 이른다.

왼쪽부터 헌트 재무, 클레벌리 외무, 윌리스 국방 장관

더타임스는 앞서 트러스 전 총리가 경쟁자였던 수낵 총리 측 인사를 내각에서 전면 배제해 당내 분열을 불러온 바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트러스 정부 인사를 수낵 총리가 다시 기용한 것을 보면 반대파까지 손을 뻗으려는 그의 의지가 드러난다”고 전했다.

총리 선출 과정의 논공행상을 위해 일부 무리수 인사도 있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 기용이 대표적이다. 보수당 우파로 분류되는 브레이버먼 장관은 개인 이메일로 기밀문서를 보냈다가 보안 규정 위반 논란을 일으켜 장관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수낵 총리를 지지하면서 기사회생했고, 결국 사임 6일 만에 다시 장관직에 복귀했다. 가디언은 브레이버먼의 기용에 당내 중도 성향 의원들이 불만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다른 수낵 지지자였던 데이비드 T.C. 데이비스 의원은 웨일스부 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성소수자 인권·어린이난민·기후변화 등과 관련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수낵 총리와 경쟁하다 막판 총리 도전을 포기한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는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가디언은 모돈트 원내대표가 외무장관 자리를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모돈트 원내대표는 총리 관저에서 약 1시간가량 머물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모돈트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더 빨리 출마를 철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남성들이 주요 보직을 독차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디언은 “여성을 희생해 남성에게 (선거 지지의) 보상을 몰아줬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법무, 재정, 외무, 국방 등 주요 장관직은 모두 남성이 차지했다. 핵심 요직 중 여성장관은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유일하다. 가디언은 ‘중간 랭킹’ 장관직에 테레즈 코피 환경부 장관, 질리언 키건 교육부 장관, 케이 바드노크 무역장관, 미셸 돈란 문화부 장관 등 여성이 기용됐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또한 역사적으로 노동당 텃밭인 영국 중부와 동북부, 이른바 ‘붉은 장벽'(red wall) 출신 인사들도 거의 외면당했다고도 지적했다. 보수당은 앞서 2019년 총선에서 이 지역을 대거 휩쓸면서 대승을 거둔 바 있다.

엘리트코스 밟은 1조원대 부자경제 혼란 수습 과제

수낵은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한반도 출신이 일본 총리에 오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980년 출생의 42세로 1812년 로버트 젠킨슨(취임 당시 42세)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수낵은 깔끔하고 정직한 이미지,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당내 소장파 의원들 사이엔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인도계라는 배경과 보수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 이미지 때문에 보수당 주류인 ‘백인 중산층 남성’에게 외면받았다. 지난 8월 트러스와 총리 후보로 맞붙었을 당시 의원 투표에서 내리 1위를 하고도 최종 당원 투표에서 57% 대 43% 득표율로 패배했다.

그는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아래서 유복하게 자랐다. 명문 사립 윈체스터 칼리지를 거쳐 영국 정·재계 엘리트의 산실인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 전공(PPE)을 졸업했다.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일했으며,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를 땄다. 2009년에는 인도 최고 재벌 중 하나인 나라야나 무르티 인포시스 회장의 딸 아크샤타 무르티와 결혼했다. 이후 여러 헤지펀드에서 일하다 2015년 35세에 보수당 하원의원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수낵 부부의 재산은 7억30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로 영국에서 222번째 부자이다.

영국 집권 보수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리시 수낵이 24일(현지시간) 선거운동본부를 나서고 있다.

트러스 전 총리가 지난 9월 취임 직후 발표한 감세안(減稅案)을 수습하지 못하자 일찌감치 영국 매체들은 수낵의 부활을 전망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수낵이 차기 총리가 되면,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부활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트러스가 촉발한 감세안 후폭풍을 수습 중인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은 존슨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직후 수낵 총리 지지를 공개 표명했다. 헌트 장관은 “수낵은 우리의 다음 지도자로서 안정과 자신감을 줄 것”이라며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일자리, 주택담보대출, 공공 서비스 문제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헌트 장관은 지난 9월 당대표 선거 때도 수낵을 지지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다섯 번째 총리가 된 수낵은 벼랑 끝에 선 영국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 올해 초 1파운드당 1.35달러에 달했던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한때 1.0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13달러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1%에 달했다. 에너지와 생필품 가격 인플레로 신음하고 있는 영국인들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따른 추가 물가상승, 금리인상이 몰고 올 주택담보대출 이자 폭등에 직면했다. 철도와 우편, 의료, 교육 등 공공 부문의 임금 인상 요구 파업이 잇따르면서 사회 불안도 심해지고 있다.

예전처럼 돈을 풀어 해결할 수도 없다. 1분기말 기준 영국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100%에 육박했다. 이탈리아(150%)보다는 낮지만 독일(68%)의 약 1.5배에 달하고, 유럽연합(EU) 평균(95.6%)보다 높다. 올해 4월 이후 추가 차입금은 725억파운드(약 118조원)에 달한다. 수낵은 재무장관 시절 “막대한 정부 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며 법인세 인상(19%에서 25%)을 결정하고, 한국의 건강보험료와 각종 사회보험료에 해당하는 국민보험분담금도 올렸다. 영국 언론은 “수낵 총리의 소신대로라면 추가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존슨과 트러스 전 총리의 실정(失政)으로 곤두박질한 보수당 지지율도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은 각각 54%와 21%로 33%포인트나 벌어졌다. 야당의 조기 총선 실시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여론에 밀려 총선을 치를 경우 정권 교체를 피할 수 없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스코틀랜드 독립 시도, 브렉시트 이후 EU와의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올겨울 에너지 부족에 따른 정전 위기 등 수없이 많은 난제가 수낵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10월24일(현지시간) 런던 시내에 있는 보수당 당사에 도착해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웃고 있다.
  • 경제·안보 등 과제 산적

 수낵 총리는 대외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우크라이나 지지 ▲영국 내 공자학원 30곳 폐쇄 ▲중국 산업스파이 척결 등을 주장했다. 수낵은 트러스 총리 시절 초래된 극심한 혼란상을 수습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침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영국은 경기침체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는 상태이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어두운 수치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 31일에 예산안 발표 여부부터 결정돼야 한다. 영국 정부는 이때 재정 전망까지 내놓을 예정이었다. 예산안엔 영국인들이 증세와 지출 삭감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지, 부채는 얼마나 늘어날지가 나오게 된다.

리더십을 발휘해 브렉시트 이후 5번째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G7(주요 7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심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존재감 부각이 중요하다.

야당의 조기 총선 실시 압박도 넘겨야 한다. 제1야당 노동당은 벌써 규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앤절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는 “보수당은 수낵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은 채 국가 운영의 열쇠를 수낵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도 국정운영의 주요 변수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독립 재투표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영국 정치에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영국 최초 MZ세대 총리

수낵 총리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았다는 이유로 ‘백인보다 더 하얗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막대한 부(富)’는 아킬레스건으로도 꼽힌다. 재산이 총 7억30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6억9000만 파운드(1조1200억원)는 아내인 악샤타 무르티가 보유한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지분이다. 무르티는 인포시스 창업자인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몸담았던 수낵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8년 1월 테리사 메이 내각에서 지방정부 차관에 올랐다. 당시 함께 일한 당 관계자는 수낵을 워커홀릭으로 묘사했다.

리시 수낵(가운데) 영국 총리가 10월24일(현지시간) 보수당 대표 당선이 확정된 뒤, 1922 위원회(보수당 평의원 모임) 위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수낵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암흑시대에 오히려 인기를 높였다. 2020년 2월 존슨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에 올라 코로나19 지원책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투입하는 등의 대규모 재정지원 정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매체들은 수낵 총리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매력적인 외모를 꼽는다. ‘매력적인 리시(Dishy Rishi)’가 별칭일 정도로 항상 잘 차려입은 모습이 영국 정계에서 돋보이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힌두교 축제 디왈리에 전해진 수낵 당선 소식흥분 휩싸인 인도

펀자브 출신 힌두교도 인도인인 리시 수낵이 영국 첫 비(非)백인 총리로 선출되자 인도에서는 감격하는 분위기다. 특히 힌두교 최대 축제인 디왈리 당일에 전해진 소식에 인도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인도 유력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는 10월24일 수낵이 영국 새 총리로 사실상 결정되자 “경쟁자였던 페니 모돈트가 경선에서 탈퇴하면서 수낵이 영국 차기 총리가 될 것”이라는 속보를 전했다. 일간 ‘힌두타임스’도 “수낵이 영국 첫 인도계 총리가 될 것”이라며 머리기사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그밖에 ‘인디아투데이’와 ‘더힌두’ 등 주요 언론도 앞다퉈 수낵 총리 당선 소식을 대서특필했고, NDTV 등 뉴스 채널들은 수낵의 가족사진 등을 공개하며 인도계 혈통을 강조했다.

리시 수낵 신임 영국 총리가 10월24일 힌두교 최대 축제 디왈리를 맞아 영국 내 한 사원을 방문해 함께 축하를 하고 있다.

 앞서 인도 언론은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사임,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불출마 선언 등 최근 영국 총리 선출 과정을 무게 있게 다루며 인도계 총리 탄생 가능성에 관심을 보여왔다.수낵의 총리 취임이 확정되자 최초의 인도계 영국 총리 탄생에 150만 명에 달하는 영국 내 인도인 지역사회는 물론 인도 본토까지 흥분에 휩싸였다. 제국주의 지배 국가를 피지배 국가 후손이 이끌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은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수낵은 영국 국적자이지만, 혈통의 뿌리는 인도에 있다. 인도 북부 펀자브 지방 출신인 조부모와 부모가 1960년대 영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수낵은 198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신분제도가 있는 인도에서도 수낵 가문은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계급이었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약사로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금융계에 뛰어들어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헤지펀드 파트너로 일했다. 인도 억만장자의 딸 악샤타 무르티와 결혼했다

수낵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영국 의대로 진학해서 의사가 됐고, 이민 1.5세인 어머니는 약사였다. 수낵의 조상은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수낵은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나 최고 명문 사립고교와 옥스퍼드대, 미국 스탠퍼드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이후 금융계로 진출해서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와 헤지펀드 파트너 등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인들은 특히 수낵의 총리 결정 소식이 힌두교 최대 축제인 디왈리 당일에 나왔다는 점을 거론하며 자축했다. 디왈리는 빛이 어둠을 이긴 것을 축하하는 축제다. 인도인들은 이 날을 전후해 집과 거리를 온갖 전등과 초로 꾸미고 가까운 이들과 선물을 교환하며 ‘해피 디왈리’라는 덕담을 나눈다. 수낵이 힌두교도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당 인도국민당(BJP) 의원인 프리티 간디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문화와 뿌리를 존중하고 인정한 자랑스러운 힌두교도의 부상을 크게 반긴다고 했다.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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