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이 떠났다”…‘70년 재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9일부터 열흘간 추모기간 지낸 뒤 국장(國葬)으로 치러져찰스 3, 국왕 공식 즉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6·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 9월8일 오후(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스코틀랜드에 있는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서거 당시 여왕의 곁에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와 부인 커밀라,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등이 곁에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버킹엄 궁전은 조기를 게양해 여왕의 서거를 알렸다. 찰스 왕세자는 즉시 왕위를 물려받아 ‘찰스 3세’로 즉위했다.

9월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여왕은 9월6일 차기 총리 내정자인 트러스 총리를 자신이 머물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으로 불러들여 만났다. 런던의 정궁(正宮) 버킹엄에서 차기 총리를 임명해온 관례를 처음으로 깬 것이다. 당시 왕실은 “여왕이 일시적인 이동 문제가 있어 런던으로 가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다음 날 7일의 추밀원(樞密院·국왕 자문기관) 온라인 회의까지 연기되면서 여왕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8일 오후 버킹엄궁이 “주치의들의 진찰 결과 여왕의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 상태”라고 발표하면서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왕실 직계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여왕이 위독한 상황에 빠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9월6일 스코틀랜드 발모랄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리즈 트러스 차기 총리를 만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군주 중에서는 최장(最長), 세계 역사에서는 둘째로 오랫동안 통치한 군주로 남았다. 역사상 최장 재위 군주는 4세에 등극해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지난 2012년 6월 엘리자베스 2세는 64년간 영국을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재위 60주년)를 맞았고, 올해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렀다.

그는 2012년 즉위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국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왕은 2021년 4월 남편 필립공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2021년 10월 병원에 하루 입원했고,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지난 2월에는 찰스 왕세자를 만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한동안 외출을 못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은 “여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으로 암 발병 가능성과 함께 코로나19 후유증 등이 언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96세로 서거평화롭게 눈 감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향년 96세. 1952년 25세 나이로 즉위해 올해 즉위 7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역대 최장수 군주이자 세계 최고령 및 최장수 통치자이기도 했다.

영국 왕실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城)에서 찰스 왕세자를 비롯해 그의 부인 카밀리아 공작부인, 윌리엄 왕세손, 안나 공주 등 직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왕실은 “여왕이 밸모럴 성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미국에 있던 해리 왕손도 이날 뒤늦게 임종을 지키기 위해 밸모럴성으로 향했다. 밸모럴성은 여왕이 매년 8~9월 머무르며 휴가를 보내던 곳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왕위는 계승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가 자동으로 계승하게 됐다. 여왕의 장례식은 관례에 따라 열흘 간 추모기간을 지낸 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예정이다.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여왕의 건강은 전날 급격히 악화됐다. 여왕은 6일까지만 해도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밸모럴성에서 정식 임명하는 등 공개 행보를 소화했다. 하지만 이후 영국 왕실은 7일 여왕의 추밀원 회의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추밀원은 여왕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고위 정치인들로 구성된 기구로 추밀원 회의는 매달 1회 열린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들의 권고로 회의 일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90대의 나이에도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오던 여왕은 2021년 10월 런던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같은 해 4월 남편 필립 공 사망 이후 건강이 빠르게 악화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5월 의회 개원 연설에 59년 만에 불참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서거로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6개국이 가입한 영연방의 군주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그의 통치 영역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는 사망 때까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등 15국(총인구 1억2900만명)의 국가 원수였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2국 이상의 독립국을 다스렸던 유일한 군주였다.

여왕은 언제나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찰스 왕세자 등 세 자녀의 이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 등 갖가지 왕실 스캔들과 불운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밴 겸손함과 온화한 미소, 돋보이는 유머 감각, 철저한 자기 관리로 70여 년간 영국과 영연방 국민의 한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여왕은 찰스 3세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낳았고, 이들로부터 8명의 손자와 12명의 증손자를 얻었다.

15명 총리와 함께한 최장수 여왕가장 부유했지만 늘 검소

방한때 하회마을 찾기도필립떠난 뒤 건강 악화국민 탁월했던 지도자 잃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자 최장수 군주로 사랑받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일 때부터 무너져 가는 왕실의 중심을 바로잡고 여성 지도자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 완벽한 여왕으로서의 삶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부친 조지 6세가 왕위에 즉위한 10세 때 본격적으로 통치자 수업을 받았다. 제2차 대전 때는 대대로 왕의 여름 거처인 스코틀랜드 밸모럴성(城)과 윈저궁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연두색 의상)이 2016 년 6월11일 90세 생일 기념 공식 축하행사에서 영국 공군 곡예비행단의 축하비행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던 모습. 사진 왼쪽부터 캐서린 세손빈, 샬럿 공주, 조지 왕자, 윌리엄 왕세손, 여왕, 필립 공.

엘리자베스는 스무 살 되던 1945년 조지 6세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밝힌 뒤 영국 여자국방군에 자원입대했다. 군번 ‘230873’을 달고 군용트럭 운전사로 복무했다. 이때 평생 반려자 필립 왕자를 만났다.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된 1950년대 들어 엘리자베스는 왕실 행사를 대행했다. 1951년 10월 캐나다, 미국 순방을 시작으로 영연방 국가를 돌아다니다가 이듬해 1월 조지 6세가 별세했다.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공적인 일에서 손을 놓고 부친을 애도하다 1953년 6월 전세계 2500만 명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공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 신의 가호 아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그리고 모든 소유지의 통치자, 영연방 수장이며 신앙의 옹호자’.
즉위 당시 대영제국의 위상은 무너졌으며 식민지들은 속속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영국 내부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왕실의 존재에 깊은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왕실이 변하지 않으면 존속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영연방 국가들만이라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순방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순방은 영국 왕으로는 전례가 없었고, 인도에는 영국 군주로서 50년 만에 방문했다. 1977년 즉위 25주년에 35개국 영연방 지도자들이 축하연에 참석하는 결실을 얻었다. 1956년 총리 교체 시기에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을 차기 총리로 밀어붙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1999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영국 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3박 4일간 방한해 서울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 자손 걱정 컸던 어머니

여왕으로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된 자손 문제로 항상 고민이 컸다. 찰스 왕세자(74)는 다이애나 왕세자빈(1961~1997)과 결혼했다가 불화를 일으켜 이혼했다. 다이애나 빈이 1997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국민은 찰스 왕세자를 원망했고 왕실 폐지론도 나왔다.

딸 앤 공주(72)는 평민 필립 대위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았다. 자식 넷 중 에드워드 왕자를 빼면 모두 이혼 경험이 있다. 2019년에는 앤드루 왕자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소개한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불거져 재판까지 받았다. 2020년 3월에는 해리 왕손(38)과 메건 마클 왕손빈(41) 부부가 왕실과의 불화 끝에 결별하며 미국 캘리포니아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해리와 형 윌리엄 왕세손(40)의 ‘형제 갈등’도 불거졌다.

이런 가족 문제에도 영국 사회에서 군주가 상징적 통치자 명맥을 잇는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 덕분이었다. 그는 가장 부유한 여성에 속했지만 검소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윈스턴 처칠부터 영국 총리 15명과 함께하며 신중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 남편 잃은 상실감에 건강 악화

고령에도 활발하게 외교 및 사회 활동을 했지만 90세를 넘자 건강 문제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2016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연례행사처럼 들르던 별장에 가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위독설(說)이 돌았다.

2021년 10월12일에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영국 왕립군 출범 100주년 기념 예배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10월 20일에는 ‘휴식을 취하라’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입원했다가 하루 뒤 윈저성으로 복귀했다. “여전히 건강 상태는 좋다”고 버킹엄궁은 밝혔지만 몸 상태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는 계속됐다.

2021년 4월 74년간 해로(偕老)한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자 여왕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여왕은 “삶에 큰 구멍이 생겼다”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그 한 달 전에는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인터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왕실 명성이 잠재적으로 손상을 입을 것을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겪은 공주님14살 때 국민연설, 18세엔 정비병 복무

현역 복무한 최초 왕실 여성 멤버2차 대전 시기 차량 정비병으로 복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청소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직접 겪었던 세대다. 그는 공주 시절부터 독일 침공의 참상 속에서도 또래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며 미래의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젊은 나이에는 직접 일선 국방 의무를 수행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프랑스어로 ‘귀족’ 이란 뜻의 nobless와 ‘의무’를 나타내는 oblige의 합성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다. 런던의 제국 전쟁박물관의 비키 호키스 큐레이터가 2021년 미국 뉴올리언스 2차대전 박물관 소식지에 기고한 글에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2차 대전 시기 여왕의 삶을 소개했다.

2차 대전 후반기 영국 육군 산하 여성부대인 ATS에서 정비병으로 복무하던 엘리자베스 여왕(당시엔 왕세녀). /The National WWII Museum New Orleans

1939년 9월 전쟁이 터졌을 때 엘리자베스 공주는 열 세 살이었다. 당시 런던에 살던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은 독일의 공습을 피해 부모와 떨어져 대피를 했다. 공주 역시 동생 매거릿 공주와 함께 런던에서 30㎞ 떨어진 윈저성으로 보내졌다.

당시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이런 식으로 대피했고, 2600여명은 호주·캐나다·뉴질랜드·남아프리카·미국 등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전쟁이 격화하던 1940년 10월13일 열 네살의 공주 엘리자베스는 윈저성에서 첫 대중연설을 가졌다. “이 나라에서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집을 떠나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계신 여러분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동시에 이들을 맞아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차 대전 후반기 영국 육군 산하 여성부대인 ATS에서 정비병으로 복무하던 엘리자베스 여왕(당시엔 왕세녀). /The National WWII Museum New Orleans

열 네살 공주의 또랑또랑한 연설이 BBC방송 어린이 시간을 통해 전국에 흘러퍼졌다. 여왕이 영국국민들에게 차기 지도자로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연설은 국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혼란기 민심을 수습하려는 술책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공습으로 공포와 혼란에 빠져있던 다수 영국인들에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황(戰況)이 격화하던 1943년에는 영국 정부가 식량난 타개를 위해 펼치던 ‘승리를 위해 밭을 일굽시다(Dig For Victory)’에 앞장서 동참했다. 직접 윈저성에서 텃밭을 일구는 사진이 공개됐다. ‘승리를 위해 밭을 일굽시다’ 캠페인은 전쟁 전까지 식량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 먹던 영국인들이 독일 침공에 따른 공급선 붕괴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자 푸성귀 등을 텃밭에서 일궈 스스로 자급자족하자는 취지로 벌이던 계도운동이다.

1945년 5월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승전 기념 군중집회에서 엘리자베스 공주(맨 왼쪽)이 ATS 군복을 입고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모후, 윈스턴 처칠 총리, 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 동생인 매거릿 공주와 발코니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National Imperial War Museum New Orleans

엘리자베스 공주는 열 여섯살 생일에는 윈저성에서 열린 군(軍)행진을 처음으로 사열했다. 열여덟살이던 1944년에는 영국군의 여성부대인 ATS(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서른살이 되지 않은 미혼 여성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직접 군에 입대하거나 군수산업에 종사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왕실도 솔선수범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1945년 3월 ‘군인’ 엘리자베스가 배치된 곳은 군용차량 정비부대였다. 그곳에서 차량정비과정을 이수해 한 달만에 자격증을 땄다. 당시 언론들은 ‘차량정비사 공주’ 등의 제목으로 엘리자베스 공주의 복무 소식을 전했다. 직접 전장에서 총포를 쏘지는 않았지만, 고난의 시기에 왕위 계승 1순위자가 직접 국가를 위해 복무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사기진작이 됐다는 평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려가던 1945년 5월8일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승전 축하 군중집회가 열렸을 때 엘리자베스 공주는 ATS 군복차림으로 조지6세 부부 및 동생 매거릿 공주, 윈스턴 처칠 총리와 함께 발코니에 섰다. 여왕은 즉위 후에는 서거 전까지 영국 및 여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연방국가들의 최고 군 지휘관 역할을 해왔다. 여왕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한 최초의 여성 왕실 멤버, 2차 대전에서 복무한 유일하게 생존했던 현역 국가 원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가 복무했던 ATS 부대는 1945년 6월까지 20만여명이 복무했고 이 가운데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7년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약혼한 필립공의 모습

여왕은 1987년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에 영국군의 6.25 참전 기념비가 제막됐을 때 직접 참석해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이 기념비는 2014년 12월 템즈강변 인근에 참전기념비가 세워지기 전까지 런던 내 유일한 한국전 관련 추모시설이었다.

타고난 외교관생전 미국 대통령 13명 만난 엘리자베스 2

왕세녀 때부터 대미외교 전면에70년간 트루먼부터 바이든까지 13명 만나클린턴 태어날 때부터 외교관

9월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70년간의 여왕 재위 기간 등을 통틀어 미국 대통령만 13명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격동의 20세기와 21세기 초까지 여왕이 전면에 나선 대미 외교는 영·미(英美) 관계는 물론 국제정치 역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여왕은 1951년 왕세녀 신분일 때 미국 백악관을 찾아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면담한 이래, 마지막으로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총 13명의 미 대통령과 만났다. 유일하게 여왕을 만나지 않은 이는 1960년대 린든 존슨 전 대통령 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미 외교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의 이런 모습은 세계에 영국 소프트파워 외교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엘리자베스는 여왕 즉위 후 자신을 처음으로 미국에 국빈 초청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는 자신만의 요리법을 알려주는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했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여왕을 유독 여러 번 만났는데, 자신의 딸을 여왕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에게 시집 보내고 싶어해서였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80년대 미국은 영국 대처 내각과 같은 보수 정부로 최고의 관계를 구가했다. 이 시기 여왕 역시 레이건 부부와 승마 취미를 고리로 친구처럼 지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방미한 여왕을 생애 처음 야구장으로 초청해 미국 대중 스포츠를 여왕이 관람하는 모습을 연출토록 했다. 2018년 부시 전 대통령 서거시 여왕은 아들 찰스를 장례식에 참석토록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여왕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성공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인 사람 같았다”고 했다.

여왕은 30대 때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동년배인 재클린 케네디와 1961년 처음 만났을 땐 그의 인기에 눌려 조명을 받지 못해 당황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왕의 몸을 만지면 안 된다는 예법을 모르고 여왕의 팔을 잡고 등을 쓰다듬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왕 앞을 가로질러 가거나 그 앞에서 등을 돌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오른쪽) 영국 여왕이 2021년 6월13일 런던 서부 윈저궁을 예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를 환영하고 있다. 바이든은 여왕이 13번째 마지막으로 만난 미 대통령으로, 회담 뒤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런던 버킹엄궁을 방문, 당시 남편 필립공을 여읜 지 두달 밖에 안된 여왕과 회담했다. 세계 정상 중 동년배조차 찾기 힘든 바이든 대통령은 17세 연상의 여왕을 만난 뒤 “그의 외모와 너그러움이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면서, 백악관에 초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발 벗고 고택 들어섰다, 하회마을 맨발의 여왕님

1999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 찾아소탈하고 현지 문화 관심 모습 지금까지 화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전세계적인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여왕과 한국과의 인연도 조명되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4월 여왕은 남편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앞서 1992년 찰스 왕세자 부부가 한국을 찾은 뒤 7년만에 군주가 방한한 것이다. 알려진대로 영국 왕실은 수년전부터 여왕의 방문국 일정을 세밀하게 조율한다. 외국 순방을 연 2회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왕의 해외순방에는 당사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한국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여왕 방한(訪韓)의 하이라이트는 양반·유교 문화의 본향인 경북 안동 방문이었다. 방한 사흘째인 4월 21일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을 때 무려 이의근 당시 경북도지사, 정동호 당시 안동시장을 비롯해 1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여왕을 반겼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봉정사를 방문해 스님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여왕은 풍산류씨 14대 종손 류영하씨 부부로부터 합죽선을 선물받고 안내를 받으며 김치와 고추장을 담그는 모습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지켜봤다. 특히 내실로 들어갈 때 직접 신발을 벗었는데, 이는 대외적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여왕의 일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방문국의 전통을 존중하는 행동으로 해석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하회마을 담연재에서는 하회탈춤보존회원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사진은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하회마을서 ‘생일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

특히 이날 안동 방문에서는 이날 73번째 생일을 맞은 여왕의 생일상이 차려졌다. 임금님 수라상에만 올리던 음식인 문어오림과 매화나무로 만든 꽃나무떡 등이 생일상에 올랐고, 불사조 장식 화관(花冠)도 선물받았다. 이날 생일상은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인 전통음식연구회 회장 조옥화 여사가 준비했다. 다과, 은행, 곶감, 약과, 청과 등이 생일상에 올랐다.

여왕은 이후 서후면 봉정사로 이동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국보 극락전을 둘러본 뒤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 글귀가 쓰여진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청기와에도 글을 남겼다 했다. 당시 여왕은 “대웅전의 부처님은 세 분인데 왜 극락전은 한 분의 부처님밖에 없느냐”고 물었고 “아미타불은 원래 혼자 계시는 것”이라고 성묵스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등 한국 불교와 사찰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왕은’ 一念萬年去 (좋은생각은만년을간다)’라는 족자를 받았고, 정동호 안동시장에게서는 200년 묵은 오리나무로 제작한 양반탈도 선물받았다. 경북 안동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방문일정지로 선택이 됐다. 이후 여왕의 안동방문은 국내에서 두고두고 큰 화제가 되면서 지역사회의 문화상품으로도 활용됐다. 특히 직접 신발을 벗는 소탈한 모습으로 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끔찍한 잘생김” 13공주, 몰락 왕족 필립공에 빠진 순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릴리벳’으로 불리던 공주 시절, 영국 왕립 해군대학 사관후보생이자 몰락한 그리스 왕족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여왕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70년 가까이 국서 자리를 지킨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2021년 4월9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영국 언론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일제히 조명했다.

  • 굴곡 없는 영국 공주와 비운의 그리스 왕자

2021년 4월10일(현지시간) 미국의 ‘타임’지는 “13세의 엉뚱한 소녀였던 릴리벳”이 “18세의 끔찍할 정도로 잘생긴 해군 장교”에게 푹 빠진 과정을 소개했다. 그리스 왕자였던 필립공은 가난하게 자랐지만, 특유의 남성적 매력과 호방한 성격, 출중한 외모로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필립공의 어린 시절은 불운으로 점철됐다. 1921년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왕 콘스탄틴1세의 조카이자 안드레아스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내 군주제가 전복돼 온 가족이 강제 추방됐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후손이기도 한 어머니 앨리스 공녀는 망명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프랑스 남부로 도망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1935년 그리스 군주제는 다시 복원됐지만 불안정했다. 이 시기 필립공은 영국 스코틀랜드 기숙 학교인 고든스턴에서 수학하며 마음을 다잡아 갔다. 하지만 1937년 누이 세실이 만삭인 채로 비행기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비극을 겪으면서 또 한차례 시련을 겪었다.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에딘버러공작)의 젊은 시절. /타임지

이후 필립공은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1939년 해군에 입대했다. 릴리벳 공주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해군학교에서 최고 생도로 뽑힌 그는 학교를 방문한 릴리벳 공주를 안내했다. 수많은 비극을 극복하고, 해군으로서의 삶을 앞두고 있었다.

  • 영국 해군서 승승장구

그는 해군이 체질에 맞았다. 21세의 나이에 영국 해군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갑판사관이자 구축함 월리스의 제2 지휘관이 됐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지중해와 태평양에서각각 시칠리섬 상륙작전, 영국군 구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타임지는 필립공이 구축함 웰프를 타고 태평양에 파견됐을 당시 그를 본 호주 여성들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우리는 모두 완전히 그에게 미쳐있었다”, “그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등이 20대의 필립공을 본 호주 여성들의 반응이었다. 그 시기 릴리벳 공주의 방에도 필립의 사진을 담은 액자가 있었다고 한다.

릴리벳 공주는 참전 중인 필립에게 종종 편지를 썼고 드물게라도 답장이 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몰래 편지를 읽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조지6세의 우려와 만류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1947년 11월, 릴리벳 공주가 20세, 필립공이 25세일 때다. 필립공은  왕실의 일원이 되면서 필립 윈저-마운트배튼, 에딘버러 공작이 됐다.

  • 자식에게 못 물려주는 영국 유일의 남자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필립공의 삶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우선 그리스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삼촌과 자신의 대부를 따라 성(姓)도 영국식인 마운트배튼으로 정했다.

애착을 가졌던 해군 경력도 일찍 포기해야 했다. 2차 대전을 치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쇠약해진 조지 6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다. 릴리벳이 1952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즉위했을 때 필립공은 여왕의 대관식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때부터 필립공의 직업은 해군이 아닌 ‘여왕의 남자’가 됐다.

조지6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뒤 두 사람을 걱정했다고 한다. 남성적 기질의 필립이 너무 젊은 나이인 30세에 그동안 쌓은 모든 경력을 포기하고 여왕의 그림자로 사는 게 쉽지 않은 거라 여겼다.

실제 필립공은 즉위 초기 엘리자베스 2세와 많은 일로 다퉜다. 엘리자베스 2세와 자식들의 성(姓)에서 ‘마운트배튼’이 사라지는 일부터, 쏟아지는 행사와 의무 속에서 자기 자신이 아닌 여왕의 남자로 행동해야 하는 일 등이 짜증으로 쌓인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자식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조지6세는 생전 엘리자베스 2세에게 “필립은 뱃사람 같은 사람이다. 한 번씩 파도를 탈 때도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직설적인 성격으로 설화를 빚기도 했지만, 그는 70년 넘게 여왕의 곁을 지키며 의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왕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리스 왕실의 몰락을 본 탓에 영국 왕실의 현대화를 위해 애썼다. 무수한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2017년 한 행사에 참석한 필립공은 자신을 두고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현판 제막 기계(plaque-unveiler)를 보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남겼다.

국왕 만세함성 울렸다찰스 3, 국왕 공식 즉위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왕위를 이은 찰스 3세가 9월10일(현지시간) 영국의 새 국왕으로 공식 선포됐다. 첫 앵글로색슨 왕인 알프레드 대왕(재위 871~899년)부터 따지면 62번째 영국 왕이다. 찰스 3세는 어머니인 여왕의 사망과 동시에 영국 국왕이 되어 실질적인 역할과 권한을 행사해 왔지만, 이와 별개로 공식적인 국왕 등극은 즉위 위원회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9월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세인트제임스궁에서 찰스 3세가 국왕으로 공식 즉위한 뒤 연설하고 있다.

추밀원과 영국 정부 대표 등으로 이뤄진 즉위 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6시)에 세인트 제임스궁에 모여 추밀원 대표 페니 모돈트 의원의 여왕 승하 소식 전달로 행사를 시작했다. 이어서 추밀원 서기가 새 국왕의 등극을 알리는 ‘즉위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 반포문에는 왕비와 왕세자, 영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 등이 서명했다.

이후 회의장 밖에 있던 찰스 3세가 위원회의 초청으로 입장해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고, 국왕으로서 맹세를 했다. 여기에는 스코틀랜드 교회를 보전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찰스 3세는 “어머니는 평생 사랑과 아낌없는 봉사를 실천했다”며 “내게 넘어온 국왕의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세인트 제임스궁의 발코니에서 가터 문장관(Garter King of Arms)이 트럼펫 팡파르와 함께 국왕의 즉위를 대중에게 최초로 선포했다. 선포 의식은 동시에 영국과 영연방 주요 도시에서도 이뤄졌다. 이어서 하이드파크와 런던타워 등에서 축하 예포가 발사됐다. 버킹엄궁과 세인트 제임스궁 등 앞에 모인 시민들은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 “국왕 만세(Long live the King)” 등을 외쳤다. 국왕의 공식 행사 의상을 입고 등장한 찰스 3세는 이에 화답해 손을 흔들었다.

찰스 3세의 왕위 등극과 함께 영국 곳곳의 조기가 내려지고, 정상적으로 깃발이 게양됐다. 이어서 내각 주요 인사들이 새 국왕을 알현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은 앞으로 수개월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은 즉위한 지 1년 4개월 만에 열렸다. 정확한 일정은 여왕의 장례식 이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여왕을 잃은 슬픔을 추스리면서, 새 국왕의 등극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버킹엄궁 앞에 모인 영국인들은 새로운 국왕 찰스 3세 등장에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환호를 보냈다.
  • 74세 즉위까지 64년 걸렸다다이애나의 남자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며, 승계 서열 1위인 큰아들 찰스 왕세자(74)가 영국 군주 자리에 올랐다. 왕명은 ‘찰스 3세(Charles III)’. 지난 1958년 왕세자가 된 지 64년 만이다.

9월8일(현지시간) 영국 왕실은 여왕의 서거 소식과 함께 찰스 3세의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 나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고 전했다. 여왕 서거 직후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는 10일 국왕의 자문기관 추밀원과 정부 관료 등이 소집되는 취임평의회를 거쳐 국왕으로서 맹세하는 공식 즉위 선언을 하게 된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공식 대관식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경우 왕위에 오르고 약 16개월 뒤에 공식 대관식을 진행했다.

찰스 3세는 영국을 포함해 56개국이 소속된 영연방의 수장이자, 이 중 영국 국왕을 군주로 인정하는 뉴질랜드·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의 군주가 됐다. 영국의 국왕은 명목상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다. 총리임명권과 전쟁선포권, 의회 소집과 해산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전통에 따라 현실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주1회 총리와의 면담 때도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고, 국민을 통합하고 대외에 영국을 알리는 상징적 역할에 주력했다.

찰스 국왕이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으며 왕위 승계순위도 변했다. 현재 왕위계승 서열 1위 자리는 그의 장자 윌리엄 왕자(케임브리지 공작)가 물려받았다. 다만 아버지가 왕위에 자동 승계된 것과 달리, 윌리엄 왕자가 영국의 왕세자인 ‘웨일스 왕자’가 되기 위해선 찰스 국왕의 임명이 필요하다고 이날 영국 아이뉴스가 전했다. 그다음 승계 서열은 윌리엄 왕자의 세 자녀(조지·샬럿·루이)다. 윌리엄 왕자의 동생인 해리 왕자가 승계 서열 5위다. 성별 관계없이 상위 서열의 자녀가 탄생하면 하위 계승 서열은 조정된다.

1948년 12월 영국 버킹엄궁에서 태어난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년만인 1958년 왕세자로 낙점된 ‘준비된 국왕’이다. 1970년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공군과 해군에 복무했다. 이후 환경·문화재 보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러 자선 사업도 펼쳐왔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그가 ‘환경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엔 고령으로 건강이 불편한 여왕을 대신해서 국정 참여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영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전임 여왕과 달리 찰스 3세에겐 다이애나비(1961~1997)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찰스 3세는 1981년 당시 20세의 다이애나비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지만, 불화 끝에 1996년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다이애나비가 BBC 인터뷰를 통해 남편의 불륜을 폭로하고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왕가의 스캔들’은 세기의 비극이 됐다.

찰스 3세는 불륜 대상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2005년 결혼했다. 그동안 카밀라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사용했던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Princess of Wales)’ 대신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왔다. 남편이 왕위를 승계하면서 영국 법에 따라 카밀라는 왕비(Queen) 칭호를 얻게 됐다. 영국 왕실 공식 홈페이지는 카밀라의 공식 호칭에 대해 ‘왕비 폐하(Her Majesty The Queen Consort)’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전 부인인 고(故) 다이애나가 함께 찍은 사진.
  • 왕세자 책봉 64년만에 왕위 오른 찰스 3, 다음 왕위 계승자는?승계 1순위는 윌리엄 왕자, 서열 2위는 윌리엄의 장남 9세의 조지 왕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큰 아들인 찰스 3세 왕세자(74)가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에 오르자 다음 승계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승계 1순위는 찰스 왕의 장남인 윌리엄 왕자(40)다. 윌리엄 왕자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구조수색대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고, 150번이 넘는 헬리콥터 수색과 구조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뒀다.

서열 2위는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장남인 조지 왕자(9)다. 서열 3위와 4위도 두 사람의 자녀인 샬럿 공주(7), 루이스 왕자(4)다. 이는 지난 2011년 영국 왕실이 승계 순서에서 남성을 우선시하는 방안을 폐지한 데 따른 것이다. 샬럿 공주는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최초의 왕실 일원이다.

승계 서열 5위는 찰스 왕의 차남이자 윌리엄 왕자의 동생인 해리 왕자(38)다. 해리 왕자도 지난 2007년부터 4개월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 복무를 했다.

해리 왕자는 지난 2018년에는 할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해리 왕자 부부는 2020년 독립을 선언한 뒤 영국 왕실을 떠나 미국에 살고 있다. 영국 왕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승계 서열은 유지된다. 해리 왕자의 두 자녀 아치 마운트배튼-윈저(3), 릴리벳 릴리 다이애나 마운트배튼-윈저(1)가 각각 승계 6위, 7위다. 승계 서열 8위는 찰스 3세의 동생이자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62)다.

그는 지난 2019년 미국의 억만장자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에 휘말리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현재 ‘전하(His royal highness)’라는 호칭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승계 서열 9위와 10위는 앤드루 왕자의 장녀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그의 딸이다. 앤드루 왕자의 둘째 딸 유지니 공주와 그의 아들은 승계 서열 11위와 12위다. 두 공주 모두 왕위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이어 여왕의 막내아들인 에드워드 왕자가 승계 서열 13위, 그의 자녀들에 이어 여왕의 딸인 앤 공주가 서열 16위다.

대통령,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에 국민께 깊은 애도

바이든 영국 여왕,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엄한 지도자

윤석열 대통령은 9월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소식에 “영국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영어로 올린 추모글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인간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존엄성의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며 “여왕의 친절한 마음과 선행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또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계대전의 어두운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을 때, 자유의 수호자로서 많은 세계인에게 위안과 위로를 안겼다”며 “여왕께서 보여준 인간적 깊이와 조국을 위한 헌신, 그리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세계가 영국과 영국 왕실에 보인 존중과 존경의 이유였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슬픔에 빠진 영국과 영연방 국가 국민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면서 “위대한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던 여왕을 잃은 가족들에게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썼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8일(현지시간) 서거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애도를 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 이상이었다”며 “그는 시대를 규정했다”고 했다. 이어 “지속적인 변화의 시대에 여왕은 영국인에게 안정과 자존심의 지속적 원천이었다”며 “전 세계인이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최초의 영국 군주였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82년 엘리자베스2 세 여왕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9·11 사태 이후 암울했던 시기에 미국 편에 서서 ‘슬픔은 우리가 사랑에 지불하는 대가’라는 사실을 깨우쳐줬다”고 회상했다.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누가 그보다 더 위대할 수 있냐”며 “오랜 기간 어떤 실수도 없이 너무 잘했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품위와 지치지 않는 집무 윤리 등으로 고유한 여왕의 역할을 만들어냈다”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영국 왕실에 조전을 보내 “수십 년간 여왕은 세계의 권위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어렵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직면한 이들이 용기로 이겨내길 바란다”고 조의를 표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여왕의 서거 소식은 깊은 슬픔”이라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신해 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영국 전체와 영국 연방에 진심으로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여왕 서거에 전세계 애도 물결불 꺼진 에펠탑, 조기 게양한 백악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8일(현지시각) 서거하자 전 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여왕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강화한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위엄과 불변의 정치인”이라며 “군주를 넘어 시대를 정의했다. 여왕의 유산이 영국 역사와 전 세계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을 비롯해 군부대와 공공장소 등에 조기(弔旗)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의회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한 9월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 남성이 백악관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프랑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왕이 70년 넘게 영국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구현했다”며 “그를 프랑스의 친구이자, 영국과 한 세기에 길이 남을 인상을 남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왕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이날 오후부터 경의의 의미로 에펠탑 조명을 끄겠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우아함과 위엄, 헌신으로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고 회상했고, 프랑치스코 교황은 “의무에 헌신한 본보기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확고한 증인”이라고 했다.

그밖에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을 비롯해 멕시코, 아랍에미리트, 뉴질랜드, 이스라엘, 케냐, 보우소나루, 이집트,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폴란드, 요르단, 파키스탄 등 전 세계 각국 정상이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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