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테슬라 따라잡는 ‘전기차의 거인’ 中 BYD 왕촨푸 회장

상반기 테슬라 제치고 친환경차 판매 129세에 연구원 박차고 나와 배터리 회사 창업

“중국 전기차 거인(BYD)의 굴기 뒤에 숨어 있는 ‘괴짜(nutty)’ 교수.”

영국의 글로벌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가 7월10일 중국 1위 전기차 기업이자 세계 3위 배터리 제조사 BYD의 약진을 분석하면서 단 기사의 제목이다. 괴짜 교수는 BYD의 창업주이자 CEO(최고경영자)인 왕촨푸(王傳福·56)다. BYD는 올해 상반기 총 64만대의 친환경차(전기·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팔아 테슬라(56만대)를 제치고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량 1위에 올랐다. BYD의 시가총액은 약 164조원으로, 테슬라·도요타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시가총액이 높은 자동차 회사가 됐다.

라이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대담한 비전과 거침없는 언행의 괴짜 창업자로 꼽힌다면, 왕촨푸 회장은 다른 의미에서의 괴짜다. 연구원 출신의 조용한 성품이지만 품질과 기술에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고 무서운 속도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기 때문이다. 빈농(貧農)의 아들에서 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를 일궈낸 왕 회장은 이제 중국의 5번째 거부가 됐다. 7월10일자 경제지 ‘포천(Fortune)’에 따르면 왕촨푸 회장의 순자산은 약 270억달러(35조원)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263억달러)도 제쳤다. 올해 3월 대비 BYD 주가가 90%나 급등한 덕분이다.

  • 빈농의 아들에서 29세 창업자가 되기까지

왕촨푸는 1966년 안후이성 가난한 농부 8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왕촨푸의 대학 공부를 지원해줬다. 그는 빨리 취업해 돈을 벌기 위해 명문고 대신 일반고를 택했다. 그리고 중난(中南)공업대에서 야금물리화학을 전공한 뒤 1990년 베이징(北京)에 있는 비철금속연구원에 들어갔다. 들어간 지 5년여 만에 부주임으로 승진해 26세에 처장(處長)을 달았다. 중국에서 가장 젊은 처장이라고들 했다.

중난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그는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의 배터리 연구원을 거쳐 학생을 가르치다 사업가의 길로 틀었다.

비철금속연구원은 1993년 선전(深圳)에 비거(比格)라는 배터리 회사를 차리고 왕촨푸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5년 왕촨푸는 금융업에 종사하던 사촌형에게 250만위안(약 4억여원)을 빌려 배터리 회사 비야디과학기술회사(比亞迪科技公司, BYD)를 창업했다. 휴대폰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였다.

당시 일본이 배터리산업을 꽉 잡고 있었지만, 왕촨푸는 일본과 경쟁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인건비 경쟁력을 활용해 자체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집중했다. 그랬더니 가격이 경쟁사 제품보다 40% 정도 싸졌다.” 당시 다른 중국 기업들은 일본 장비와 재료를 들여와 단순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BYD는 자체 기술 확보에 매달렸다.

왕촨푸 회장은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했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도 수일 뒤에 집에 들어간 일화도 유명하다. BYD는 창업 후 3년 연속 매년 100%씩 성장했고 휴대용 전자기기와 장난감에 많이 쓰이는 니켈카드뮴 배터리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했다.

2003년 왕촨푸 회장은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했다. 앞으로 차에 배터리가 달릴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배터리로 번 돈을 모두 적자인 전기차에 쏟아부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전기차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2003년은 테슬라가 설립된 해다. 이후 2010년대 중국이 전기차 진흥정책을 펼치면서 BYD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 배터리 회사에서 자동차 회사로

직원 20명이 선전시의 낡은 차고에서 시작했다. 당시 배터리업계는 일본이 장악했고 중국 기업은 조립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 회장은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충전용 배터리 핵심부품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이 용량도 작고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니켈카드뮴 전지 생산을 중단하자 왕 회장은 이를 기회로 니켈카드뮴 전지로 사업을 넓혔고, 하루에 4000개까지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세웠다. 파나소닉, 소니, GE 등이 BYD 고객사가 됐다.

리튬배터리 생산에 대규모로 투자해 2000년에는 모토로라에 리튬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1년 이 회사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분야별로 세계 2~4위까지 올라갔다. 이를 바탕으로 왕 회장은 2002년 홍콩 증시에 BYD를 상장했다.

배터리 회사에서 자동차 회사로 성격을 바꾼 것은 2003년이다. 왕 회장은 2억6900만위안을 주고 산시성의 시안친촨자동차 지분 77%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사실 시장에선 그가 무리했다고 생각했다. 주가는 순식간에 30% 넘게 떨어졌다.

유망한 배터리 회사의 실패한 인수합병(M&A)이 될 수도 있었지만, 상황은 왕 회장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2004년 중국 정부가 자동차 공장 신설 투자액을 2억4000만달러 이상으로 제한하면서 신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자 워렌 버핏 측에서 BYD에 주목하고 투자 의향을 밝혔다.

데이비드 소콜 당시 벅셔해서웨이 대표가 직접 BYD에 찾아와 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왕 회장은 지분 10% 이상의 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벅셔해서웨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막 시작되던 2008년 9월 BYD 지분 10%를 18억홍콩달러를 주고 샀고, BYD 주가는 치솟았다.

당시 찰리 멍거 벅셔해서웨이 부회장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왕 회장이 “발명가 에디슨과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을 합친 듯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 전기차 제조의 A부터 Z까지

왕촨푸 회장은 일찍이 공급망의 중요성을 알아봤다. 그는 2018년 “모토로라·노키아 등 전세계 휴대폰에 배터리를 공급해봤더니 작은 부품 하나만 고장이 나도 휴대폰이 먹통이 됐다”면서 “최종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전기차 배터리와 차량용 반도체 제조를 시작했고, 광산 인수를 통해 배터리 원자재 확보에도 나섰다. 현재 BYD 전기차의 부품·원자재의 90%는 모두 BYD가 자체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료와 최종 제품까지 전기차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셈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올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3위(12.1%)다. 칼날처럼 길쭉해 ‘블레이드 배터리’라 불리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직접 개발했는데, 50t 트럭이 밟고 지나가거나 송곳으로 찔러도 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왕촨푸는 “배터리 폭발이야말로 전기차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라면서 배터리 화재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인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에 반하는 메시지를 절대 내지 않고, “회사의 목소리는 단 하나뿐이어야 한다”며 돌출 발언도 하지 않는다. FT는 “왕촨푸는 이제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다”며 “BYD의 남은 과제는 내수 시장을 떠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보기술(IT), 자동차, 신에너지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BYD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미국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투자한 회사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BYD는 Build Your Dreams(당신의 꿈을 이뤄라)라는 뜻이다. 휘발유로 달리는 자동차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한다.

250만위안으로 시작한 BYD를 여기까지 키워낸 것은 왕 회장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나는 행동에 옮기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려 한다”는 그의 발언은 유명하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박하지만, 전기차·스마트카 등 차세대 자동차 시장이 확대될수록 BYD의 존재감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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