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익의 상징’ 아베 뒤에는 일본회의, 그 뒤엔 종교집단 있다

총격범 “어머니 종교단체 빠져 가정 파탄…아베, 연관 있다고 봤다“…日신문 “‘외로운 늑대’의 단독 범행”

일본 ‘우익의 상징’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일본 총리가 7월8일 나라(奈良)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가두 유세 도중 테러리스트의 총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용의자인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1)는 “특정 종교단체에 원한이 있는데 아베 전 총리가 그 단체와 연결돼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일본 경찰이 밝혔다. 정치적으로 우익 성향인 아베 전 총리를 노린 ‘확신범’이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단독으로 행동한 ‘외로운 늑대(단독으로 행동하는 테러리스트)’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야마가미는 정치적으로 우익 성향인 아베 전 총리를 노린 확신범이 아니라 어머니가 빠진 특정 종교단체가 아베와 연결돼 있다고 믿고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7월9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 이름을 거론하면서 “어머니가 그 단체에 빠져들어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진술했다. 이어 “이 단체 리더를 노리려고 했지만 어려워 아베 전 총리가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노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다만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 야마가미가 특정 종교단체 간부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 간부를 노릴 생각이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고 보도했지만, 용의자가 거론한 종교단체 간부는 사건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마가미는 자민당 홈페이지에서 아베 전 총리가 나라시에서 가두 유세를 하는 사실을 알고 전철로 범행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7월8일 일본 나라시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 총격범 야마가미 테츠야(가운데)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검은 테이프로 감긴 사제 총을, 자택에서는 사제 총 몇 정과 화약류를 압수했다. 야마가미는 “인터넷에서 부품을 사서 스스로 권총을 만들었다. 권총을 많이 만들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2002∼2005년 해상자위대에서 임기제 자위관으로 재직했으며 당시 소총의 사격과 해체 조립에 대해 배운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20년 가을부터 교토(京都)부에 있는 창고에서 지게차 운전 일을 했지만 ‘힘들다’며 올해 5월 퇴직해 현재 무직으로 알려졌다.

특정 정치단체나 폭력단에 소속되지 않았으며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수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용의자가 자신이 직접 만든 총을 사용한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설했다.

야마가미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해상자위대에서 임기부 자위관으로 근무했다. 방위성은 임기부 자위관의 경우 총의 구조를 이해하는 교습 이외에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방법, 사격훈련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은 야마가미를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기억했다. 야마가미는 2020년 가을부터 간사이 지방에 있는 제조업체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다가 지난 5월 퇴직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말수가 적었다. 공격적인 느낌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치적인 사상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야마가미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본 적이 없다”며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지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오전 11시30분쯤 나라시에서 유세하던 도중 야마가미가 7, 8m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같은 날 오후 5시3분 숨졌다.

전쟁 가능한 일본꿈꿨던 아베마지막까지도 막후 영향력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외손자우익 상징이자 戰後세대 첫 총리

  • ·내각 요직 모두 거치며 두각

7월8일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거리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숨진 아베 전 총리는 통산 8년8개월에 걸쳐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일본정치의 보수화를 이끌었다. 향년 67. 1954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아베 전 총리는 외무상을 지냈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1924~1991)의 비서로 1982년 정계에 입문했다. 1991년 아버지가 별세하고 2년 뒤인 1993년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8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전광판에 올라온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뉴스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일본의 ‘세습 정치인’ 중 하나였던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중요 현안으로 떠오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익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치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2년 9월 이뤄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1차 방북(訪北)이었다. 당시 관방 부장관으로 동행한 아베 전 총리는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며 ‘신뢰할 수 있는 우익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주가가 오른 그를 2003년 자민당 간사장, 2005년에는 내각의 2인자로 불리는 관방장관으로 임명했다. 당과 내각의 요직을 모두 거친 그는 2006년 전후(戰後) 최연소인 52살로 총리에 올랐다. 첫 전후 세대 총리이기도 했다.

  • 첫 집권기는 1년으로 끝났지만 아베노믹스로 장기 집권 성공2015韓日위안부 합의

아베 전 총리는 1차 집권 시기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연합국 점령 아래서 군대 보유 및 전쟁 금지를 규정한 현 ‘일본국 헌법’이 제정되었다고 보고, 개헌을 통해 타파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는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 용의자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였다. 기시는 전력 보유 금지를 규정한 일본의 ‘평화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것으로 보고 헌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아베 전 총리도 그 뜻을 이어받아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으며 마지막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아베 전 총리의 1차 집권은 1년 단명에 그쳤다. 교육기본법 개정 같은 보수적이며 이념적인 정책, 위안부 동원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담화)에 대한 공격에 치중했다. 여기에 각료들의 망언과 정치스캔들이 겹쳤다. 미국 하원은 이에 맞서 2007년 7월말 위안부 결의안을 내놓았고, 같은 시기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도 대패(大敗)했다.

결국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까지 겹쳐 2007년 9월12일 사임을 발표했다. 이 일로 가볍게 정권을 내던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아베는 절치부심했다.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강한 외교’와 ‘아베노믹스’와 같은 실용적 정책 등을 내세워 2012년 12월 두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보수적 이념 지향성은 그대로였지만 정권 운영에 완급을 조절했다.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집권 초부터 금융완화를 뼈대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일본인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정책에 집중한 것이다.

이런 노련한 정국 운영이 효과를 발휘해 2차 정권은 7년8개월에 이르는 장기집권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2014년 7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허용하는 헌법의 해석 변경, 2015년 9월 이를 구체화하는 안보법제 제·개정을 이뤄냈다. 또 2016년부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구상을 내세웠다. 이 구상은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으로 채택돼 ‘쿼드’ 결성으로 구체화됐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공동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미·일(美日)동맹을 이전보다 활동 범위와 역할이 확대된 ‘글로벌 동맹’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집권 기간 내내 목표로 삼았던 것은 개헌이었다. 2017년 5월에는 교전권 포기를 명기한 9조는 그대로 놔두고 자위대 관련 기술을 추가하는 개헌을 하겠다며 2020년이라는 목표 시점까지 언급했다. 2차 정권 출범 뒤 모든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기세로 봤을 때 그가 ‘필생의 과업’을 이뤄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 벚꽃 스캔들·코로나19로 정치 타격지병 이유로 총리직 사퇴했으나 막후서 정계에 영향력 행사

하지만 야당의 완강한 반대와 연립여당인 공명당(公明黨)의 회의적 반응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집권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피로도도 증가했다. 그와 가깝거나 가까워 보이는 인물들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특혜를 받았다는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 스캔들’, 국가 예산을 지지자들을 접대하는 데 사용했다는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기폭제가 됐다. 도쿄올림픽 개최는 한해 연기해야 했고 2020년 봄 내각 지지율은 위험 수위로 불리는 20%대까지 떨어졌다. 그는 그해 8월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이유로 사의를 밝힌 뒤, 9월 총리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아베는 퇴임 뒤에도 일본 정계를 여전히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었다.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른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는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정책을 계승해나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말하며 총리직에 올랐다. 2021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淸和정책연구회)의 수장 자리를 유지했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대하는 한국인의 평가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식민지배에 대해 더 이상 사죄와 반성을 할 수 없다는 ‘역사 수정주의자’였고, 또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려는 ‘우익’이었다. 2015년 12월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이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 합의를 통해 한·미·일(韓美日) 삼각동맹을 구축하려고 했다.

2016년 10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달라는 요구가 나왔지만,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단칼에 거부했다. 그가 원한 것은 한·일이 역사를 잊고, 안보협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유산은 앞으로 오랫동안 일본 정치를 떠돌 것으로 보인다.

아베 피격에 강경파 주도권 쥘 듯동아시아 평화에 먹구름

710일 선거 이후 당내 강경파 주도권 쥘 듯9조 개헌, 방위비증강 등 매파 정책 예상과 관계개선 노리던 큰 악재

“이후 정국 영향에 대해선 지금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 나도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 먼저 지금의 엄혹한 상황에 대해 ‘구명 조처’가 이뤄지도록 만전의 대응을 하는 게 중요하다.”

7월8일 오후 2시40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저격’ 소식을 듣고 급거 도쿄 총리관저로 돌아온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극히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나섰다. 몰려든 기자들이 아베 전 총리의 저격 사건이 향후 일본의 정국에 끼칠 영향을 물었지만, 아직은 이를 언급할 때가 아니라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7월8일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을 당하기 직전 참의원 유세 가두연설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연설 도중 괴한에게 두 차례 총격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2012년부터 무려 7년 8개월 동안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의 총리직에 머물며, 신냉전으로 접어드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침로’를 결정한 아베 전 총리의 존재감을 생각해 볼 때 이번 사태는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당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7월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이다. 일본에선 유력 정치인이 뜻하지 않게 숨을 거둔 뒤 이어지는 선거를 ‘도무라이 갓센(弔い合戦)’이라 부른다. 한 사람에 대한 추모 열기 속에 이뤄지는 선거이기에 그의 유지(遺志)를 이어받는 쪽이 큰 승리를 거둔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선거에선 자민당이 ‘사분오열’된 야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둘 것이란 예측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선 여당(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유지하고,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자민당과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4개 여야 정당도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유지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전망했다.

이번 선거는 당초 2021년 10월 취임 이후 아베 전 총리의 ‘강경 노선’에 눌려 있던 기시다 총리가 승리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펴나가는 계기가 될지를 두고 관심을 모았었다. 하지만 이번 저격사태로 선거의 성격이 ‘기시다의 독립을 건 싸움’이 아닌 ‘아베를 추모하는 싸움’이 되었다.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뒤에도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이 줄고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어가야 한다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경제산업상 등 강경파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수장을 맡고있는 아베파(세와정책연구회)는 전통적인 매파·보수 파벌로 당내에서 가장 많은 현역의원 95명을 거느리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64)가 7월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선거유세 도중 피격돼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67)와 관련해 취재진에게 설명하던 도중 잠시 발언을 멈추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경파가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면, 향후 개헌이나 현재 진행 중인 외교안보 정책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먼저 개헌이다. 아베 전 총리와 그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은 개헌을 자신들의 ‘염원’, ‘필생의 과업’이라 불러왔다. 기시다 총리는 개헌 자체엔 동의하면서도 일본의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한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에 대해선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일본 정계의 분위기가 단숨에 9조 개헌 쪽으로 휩쓸릴 가능성이 커졌다. 자민당은 아베 전 총리 재임하던 2018년 9조,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삽입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다음으로는 외교·안보 노선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 공약집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증액을 목표로 하는 것을 고려해 2023년부터 ‘5년 이내’에 필요한 예산 수준의 달성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이 공약이 현실화되면 5년 뒤 일본 방위예산은 10조엔(약 100조원)을 넘어 세계 3위 수준에 이르게 된다.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증액에 숫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는 식으로 말해왔지만, 여기서도 당내 강경파들의 주장에 밀리게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미일(美日) 관계나 한일(韓日) 협력에도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 등을 개정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2016년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처음 제기했다. 최근에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기하며 “대만 유사사태는 일본의 유사사태이고, 일미(日美) 동맹의 유사사태”라는 인식을 거듭 밝혀왔다. 한국에 대해선 2015년 8월 아베 담화를 통해 더 이상 역사 문제로 사죄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고, 그해 말 위안부 합의 뒤엔 합의에서 1㎜도 움직일 수 없다고 해왔다. 일본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잡아가려 했던 윤석열 정부 입장에게도 아베 전 총리의 변고는 ‘재앙적 뉴스’라 할 수 있다.

최대 우익단체 사상적 뿌리는 신흥종교집단 생장의 집日帝의 토대였던 민족종교 神道가 기둥

이번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건은 아베가 이끈다고 생각한 종교단체에 의해 한 가족이 해체되면서 그에 대한 울분으로 일을 저지른 사건으로 드러났는데, 그것이 일본회의 관련 종교단체이다. 일본회의의 기본방침은 국민주권을 부정한 천황제의 부활, 애국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쇼와 히로히토(昭和 裕仁, 1901~1989) 천황의 재위 50년 봉축 행사와 원호(연호) 법제화, 기원절(건국기념일) 부활 운동을 펼친 우파인사들의 조직으로 “일본 정신의 현현”을 내세우면서 창설했다.

한때 신자의 수가 300만명이 넘었던 신흥종교단체 ‘생장의 집(生長の家 ·세이초 노이에)’ 교주 다나구치 마사하루(谷口 雅 春 원래 谷口正治로 쓰여짐, 1893~1985)의 사상을 교의(敎義)로 삼아 1974년 결성된 종교단체로 알려졌다. 2000년 12월31일 기준으로 공식 집계된 신자수는 212만 명, 내일본에는 약 85만 명이라 주장된다. 현재 총재는 다니구치 마사하루의 외손자인 다니구치 마사노부(谷口 雅 宣)이다.

2008년 10월28일 디니구치 마사하루의 사위이자 다니구치 마사노부의 아버지 다니구치 세이 초(谷口 清 超, 1919~2008)가 89세에 사망하여 입교기념일인 2009년 3월1일 다니구치 마사노부가 제3대 생장의 집 총재로 취임했다. 총본산으로서 류규스미요시(龍宮住吉) 본궁이 나가사키(長崎)현 사이카이(西海)시에, 별격 본산으로 호조 신사가 교토(京都)부 우지시(宇治市)에 각각 있다.

이들이 따르는 다나구치의 책 『생명의 실상』은 “전세계 인류가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태어날 때부터 신이 지도자로 정한 일본 황실이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 일본인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신에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사상을 바탕으로 신앙 개조를 통해 질병을 치유하고 인생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대중 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신앙은 일본 신토(神道)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신토, 불교, 기독교, 이슬람, 심리학, 현대철학 등 다양한 종교 교리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신토계 신흥종교에서 독립해서 설립되었고 ‘생장의 집’은 독립 전 포교용 잡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과거에는 극우성향의 일본회의 등에도 깊이 참여하고 참의원 참여 등 활발하게 정치활동도 했지만 3대 교주부터는 일본회의와 관계를 끊고 정치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주로 교주의 저서 보급, 번역 등 촐판활동 중심으로 자금을 모아 주로 생명윤리나 환경문제에만 참여하고 있다. 경전으로 『생명의 실상』 40권, 『감로의 법우』, 『일곱 개 등대 점등자의 신시(神示)』 등이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아베 정권 당시 각료들 대다수가 일본회의 멤버들이다. 사진은 2017년 8월3일 개각 뒤 기념촬영을 한 아베 신조(앞줄 중앙) 총리와 각료들.

대표적인 우익단체 일본회의(日本會議, 닛본가이키)의 핵심 멤버 대부분은 다니구치가 만든 ‘생장의 집’의 열성 신도들의 자녀들이다. 예컨대 일본회의 사무총장 가바시마 유조는 1960년대 중반 일본 대다수 대학을 신좌익의 전학공투회의(全學共闘會議)운동이 장악하고 있었을 때 규슈 나가사키대에서 좌파학생운동에 반대하는 우파운동단체 ‘유지회’를 만들어 안도 이와오 등과 반좌익 투쟁을 벌였다. 가바시마는 스즈키 구니오의 와세다대 유지회 운동과 더불어 일본 학생운동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들은 후일 일본회의의 핵심세력을 이룬다. 여기에다 이세신궁(伊勢 神宮)을 본종으로 하는 ‘신사본청’을 정점에 둔, 막강한 자금력과 동원력을 가진 종교단체 신토(神道)가 가세했다. 일본회의의 뿌리(원류)가 ‘생장의 집’이라면 현재 일본회의를 지탱하고 있는 주축은 전쟁 전 국가·민족종교로서 천황제와 일체였고 지금 그것을 다시 꿈꾸는 전국 8만여 개의 신사를 거느린 종교단체가 신토이다.

  • 일본 최대 우익단체의 기원과 실체를 해부한 책 일본회의의 정체

교도(京都)통신 서울특파원을 지낸 일본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 아오키 오사무(青木理)가 “일본회의가 위험하다고 보느냐”고 시마조노 스스무(島薗 進) 도쿄대 명예교수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전쟁 전으로의 회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오키의 『일본회의의 정체』(아오키 오사무 지음/이민연 옯김/율리시즈, 2016)는 일본 우익 최대 로비단체 ‘일본회의’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일본회의의 ‘국회의원간담회’ 가맹의원은 중·참의원 합해서 281명(2015년)이다. 이들 중 집권 자민당 의원이 약 90%를 차지한다. 아베 제3차 내각 각료 20명 중 13명, 즉 65%가 그 간담회 회원이었고, 2014년 제2차 내각 때 그 비율은 80%에 달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각료가 일본회의 멤버란 얘기다. 일본회의 지방의원연맹 소속 의원 수도 1700명이나 된다. 이쯤 되면 일본을 움직이는 것이 일본 정부인지, 일본회의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일본회의의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천황제 부활, 국민주권 부정), 헌법 개정, 국방의 충실(재무장), 애국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그야말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치달은 쇼와(昭和: 히로히토 천황) 시대 전시체제로의 반동적인 ‘원점회귀’이다.

일본회의는 1997년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지키는 모임)이 통합, 결성한 조직이다. 히로히토 천황 재위 50주년 봉축행사와 원호 법제화, 기원절 부활 운동을 펼친 재계와 정계·학계·종교계 우파인사들의 조직이다. ‘지키는 모임’은 1930년대에 “일본정신의 현현”을 내세우며 창설해 한때 신자 수가 300만이 넘었던 신흥종교단체 ‘생장의 집’ 교주 다니구치 마사하루의 사상을 교의로 삼아 1974년에 결성된 종교 우파조직이다. 다니구치의 대표 저서인 『생명의 실상』은 190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생장의 집’에 관한 서술이다. 과대망상적이고 침략적인 자민족중심주의는 “사상·신앙 개조로 질병을 치유하고 인생고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언설과 함께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일본회의의 핵심 멤버 다수가 바로 이 다니구치가 만든 ‘생장의 집’ 열성 신도들의 자녀들이다.

그들을 촉발한 건 패전 이후 체제에 대한 울분, 군림했던 이전 체제에 대한 향수와 민족적 우월감, ‘과거의 영광’과 동일시되는 국체(천황제)를 부정한 좌파 및 공산 혁명에 대한 불안과 거부, 1990년대 냉전 붕괴와 급속히 힘을 키운 중국 등 주변국의 성장과 일본의 상대적 약화 및 전망 불투명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감이라고 『일본회의의; 젗체』의 저자는 정리했다. 그런 그들이 아베 정권과 일본을 움직였고 현 기시다 정권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수암(守岩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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