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에도 집필…‘한국인’ 천착한 시대의 지성, 이어령 별세

언론인·작가·교수 등으로 활약한 시대의 지성32일 문화체육관광부장() 엄수

“숨쉬기 힘들어하셔서 제가 편하게 안아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주 가벼운 숨이 느껴져 가족들이 ‘다시 숨을 쉬신다’고 기뻐하며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렀어요. 그 가벼운 숨이 마지막이었습니다.”

2월26일 낮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큰아들 이승무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특히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표정이었다. 허공을 아주 또렷하게 30분 정도 응시하시더라. 마치 죽음과 흥미로운 대결을 한번 해보시는 듯하다가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라고 했던 발언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한 마지막 모습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월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문학평론가, 문화기획자,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냈고, 예술원 회원(문학평론)으로 활동했다.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유족은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통증 없이 돌아가셨다”며 “유언은 따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생애 마지막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에 몰두해왔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책은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다. 12권으로 계획한 시리즈 중 2020년 2월 첫 권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건국대 명예교수),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 등 2남 1녀를 뒀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 검사를 지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고인의 장례는 5일장으로, 발인은 3월2일 오전 8시30분.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10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별도로 문화체육관광부장(葬)으로 엄수됐다.

  • 새하얀 눈길, 첫발 찍는 재미로 살았다

이어령 전 장관은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뒤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예봉을 휘두르며 10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그는 스물둘의 나이에 기성 문단을 통렬히 비판하는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지식 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대의 문인들을 “무지몽매한 우상”이라 일컬으며 지식의 정확성을 요구했고, 1960년대 후반 김수영 시인과 조선일보와 사상계의 지면을 오가며 ‘순수참여 문학’ 논쟁을 이끌었다. 이 전 장관은 “문학의 가치는 정치적 불온성 유무로 재판할 수 없다”며 순수 문학의 편에서 참여 문학을 비판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새하얀 눈길에 첫발 찍는 재미로 살았다”고 말한 그의 삶은 창의적 르네상스맨으로 요약된다. 또 “짧게 말하겠다”면서도 홀로 서너 시간은 족히 쏟아내는 달변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1963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펴내며 윷놀이, 돌담, 팽이채 같은 친숙한 소재를 활용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향하는 한국 문화의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했고, 1982년 출간한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선 하이쿠와 분재, 쥘부채 등에 공통으로 나타난 ‘축소 지향’으로 일본 사회의 심층을 분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총괄 기획하며 개회식 마무리에 침묵 속에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을 내세우기도 했다. 한국적인 정적과 여백의 미학과 더불어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의 자부심을 세계에 각인시킨 명장면이었다.

이어령 전 장관은 타계 나흘 전인 2월22일 이 시를 남겼다. 2012년 세상을 떠난 맏딸 이민아 목사를 기리는 자신의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의 서문이다. 3월15일이 이 목사 10주기다.

고인은 1990년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뒤 국립국어원을 세워 언어 순화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장관으로서 가장 잘한 일은 ‘노견(路肩)’이란 행정 용어를 ‘갓길’로 바꾼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해 문화 인재 양성의 초석을 놓았다.

고인은 교사·교수, 문예지 발행인, 신문사 논설위원 등 10여 개가 넘는 직함을 가질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기술과 인간, 과거와 미래의 화합은 고인이 천착한 주제였다. 2000년대 정보화 사회에 ‘디지로그(digilog)’란 개념을 주창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을 모색했고, 201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다음 과제로 ‘생명’을 꼽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2017년 암이 발견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저서 집필에 몰두했다. 그의 서재엔 7대의 컴퓨터와 2대의 스캐너 등 디지털 장비가 즐비했다. 아내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는 “집에 오면 늘 컴퓨터에 파묻혀 글을 썼고, 몸이 성치 않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원고를 써냈다”고 회상했다.

젊은 시절 이성(理性)의 언어를 신봉했던 고인은 말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갔다. 외동딸 이민아 목사의 투병 과정에 영향을 받아 2007년 기독교 세례를 받으면서다. 그런 내면의 변화를 2010년『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담았다.

이 전 장관은 2012년 이 목사를 암으로 잃고서 기독교에 귀의해 “지성의 종착역은 영성(靈性)”이라 말했다. 최근 출간된 책 『메멘토 모리』(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고인이 생전 즐겨 말하던 라틴어 낱말이었다. 그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란 말을 남겼다.

  • 산다는 것은 내 이야기 하나 보태고 가는 것

작가 이상(李箱)을 재발견한 인물, 1988년 서울올림픽의 구호 ‘벽을 넘어서’를 만든 사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창설을 주도하고 ‘갓길’이란 말을 만든 인물…. 국내 문화계에 이렇게 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89년이라는 짧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고인의 활동 반경은 시간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한국인의 의식과 감수성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젊어서 김동리·조연현 등 당대의 문학 권력을 비판한 투사였고, 난해한 시인 이상을 날카롭게 해석한 문학 연구자였다. 시인·소설가이자 교육·문화기획·문화행정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당대의 문화인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이름 자체가 한국의 독자적인 명예요 브랜드였던 분”이라고 평했다.

무엇보다 예민한 촉수와 언어 감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문명비판적인 작업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한국적 심성의 실체를 문화적으로 풀어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 하이쿠·분재 등에서 일본적 특성을 간파한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은 베스트셀러였다. 2006년 중앙일보 연재 칼럼을 묶은 『디지로그』에선 디지털 열풍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따뜻하게 보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성한 필력으로 『가위바위보 문명론』 『보자기 인문학』 『지의 최전선』 등 13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 열두 권으로 기획된 한국인 시리즈 첫 책 『너 어디에서 왔니』를 2020년 초에 펴내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 ‘크리에이터’라 불렀다. 2009년엔 각계각층 인사가 멘토로 참가하는 창조학교를 만들어 군사력·경제력에 앞서는 창조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년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산다는 게 뭔가. 내 이야기 하나 보태고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대통령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

문재인 대통령은 2월26일 오후 7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이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한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날 SNS 메시지를 통해 “오늘 하늘도 큰 스승의 부재를 매우 아쉬워하는 듯하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과 제자들, 선생님을 추억하는 국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문화의 발굴자이고, 전통을 현실과 접목하여 새롭게 피워낸 선구자였다”며 “어린이들의 놀이였던 굴렁쇠는 선생님에 의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의 여백과 정중동(靜中動)의 문화를 알렸다”고 했다. 또 “우리 곁의 흔한 물건이었던 보자기는 모든 것을 감싸고 융합하는 전통문화의 아이콘으로 재발견 되었다”며 “우리가 우리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 데는 선생님의 공이 컸다”고 평가했다.

편히 잠드소서이어령 영결식 엄수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은 벗어버리고 이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자유로운 정신과 영혼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고 이어령 장관의 평안과 안식을 빕니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3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도서관 발전정책 기반 마련 등을 통해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장례를 문화체육관광부부장(葬)으로 거행했다. 특히 문인으로서 평생을 집필활동에 몰두하고, 문화부 장관 재임 시 도서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고인을 기려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弔辭),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 등으로 진행됐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3월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 황희 “故이어령 기억할 공간 마련…숨결 이어가겠다”

황희 장관은 “고인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 전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고 고인이 장관으로 재직 시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사항을 강조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고 추모했다. 이어 “숱한 업적들 속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시대의 우울과 그늘을 걷어냈던 고인의 말씀”이라며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깃든 말씀은 밤하늘의 별처럼, 등불처럼 어두운 길을 밝혀주셨다”고 했다.

황 장관은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그 말에 늦었지만, 같은 말로 화답 드리고 싶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 시대의 옳은 목소리를 내어주신 고인의 삶이 우리에겐 선물이자 희망이었다”며 “생전에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 하셨다. 그 말씀 그대로 고인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계실 것”이라고 추도했다.

시인인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운 빛의 붓,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밝히소서. 고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올린다”며 헌시를 공개했다. 그는 “분단의 나라에서 냉전의 벽을 깨뜨리는 서울올림픽의 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굴렁쇠 소년은 바로 선생님의 모습이었고 새천년의 아침에 북소리로 띄운 해는 이 나라 5000년 역사의 눈부신 새 아침이었다”며 “선생님은 이 땅의 한 시대의 어둠을 새벽으로 이끈 선각이시며 실천가이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아울러 “붓의 시대에서 오늘의 AI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혜안은 먼 미래를 앞서 내다보셨고 새 이론의 창출은 어김없이 실용화됐다”며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한예종을 비롯한 문화 대역사를 이루셨으며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추모했다.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가셨다는 선생님, 죽음이 올 때는 고개 돌리지 않고 뜬 눈으로 정 대면하며 ‘거기에 있겠다’는 선생님이 가장 명철한 선생님답다”며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고 애도했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 가운데 황희 장관과 유가족 등 참석자들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조사와 추도사 이후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을 상영했다. 영상에는 고인이 이룬 방대한 업적을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와 같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당부,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와 같은 고인이 별세하기 전 남긴 말을 담았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진행하고 고인이 설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추모공연으로 영결식을 마무리했다.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엘레지(Élégie)’를 연주하고, 국악 공연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弔唱)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문체부 전 장관들, 문화예술계 인사들 한자리에

영결식에는 유족과 이채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박정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김승수 국민의힘 문체위 간사,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문체위 위원, 송태호·신낙균·김성재·김종민·유인촌·정병국·박양우 문체부 전임 장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 공공기관장과 문화예술계 인사 등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2017~2019년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 지성을 대표하시는 분이셨고 문학하시는 분으로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며 “선생의 정신을 문학으로 어떻게 이어갈까 하는 고민을 지난 며칠간 했다. 선생께서 문학으로 이루신 큰 성취를 잘 이어가자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인 박양우 전 장관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문화정책, 행정의 달인이셨다. 우리나라의 예술뿐 아니라 문화행정에 있어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며 “개인적으로 그분 밑에서 행정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고인은 떠나셨지만 행정하는 문체부 후배와 동료들은 장관의 정신, 행정하셨던 뜻을 받아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인촌 전 장관은 “이 전 장관은 우리 문화의 상징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마음이 많이 안타깝다.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돌아가시기 불과 1주일 전에 인사드리러 갔는데 너무 많이 마르셔서 걱정이 됐다. 결국 이렇게 가시게 됐는데 이제 잘 가시도록 기도하겠다”고 했다.정병국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문화강국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으셨다. 제가 장관에 취임하고 인사를 갔을 때 제게 ‘흙속에서 저 바람속에서’와 ‘디지로그’를 선물하셨다”며 “돌아와 책을 읽어보니 우리 문화를 발굴하셨고, 우리 문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셨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 재임 당시 수행비서였던 박광무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31년 전에 모셨다. 그후에도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뵙고 지혜를 얻었다”며 “이 전 장관께서 못 이루신 일들을 후대 문화부 후배들이 감당해 우리나라 문화의 발전뿐 아니라 세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한 달 전쯤 찾아뵜다. 지난 30년을 짚으시면서 앞으로 30년의 해야할 일을 말씀하셨다”며 “예술은 표현하기 위해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씀 깊이 새기면서  더 좋은 한예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 후 화장천안공원묘원 안장

고인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는 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날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광화벽화’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과 추모 문구를 표출해 애도의 뜻을 더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해당 문구는 고인의 유족들이 직접 선정한 것들이다.

고인은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한다”며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고 전했다. 아울러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라”며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한다”고 했다. 그는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며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말라”고 전했다.
2월26일 별세한 이 전 장관의 장례는 문체부장으로 5일간 치러졌다. 발인은 이날 오전 8시30분이었으며 영결식 후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충청남도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된다.

48년 전 이어령·게오르규의 만남

삼성출판박물관은 2월26일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가운데)이 1974년 한국을 찾은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1916∼1992·맨 왼쪽)와 만났을 때 모습을 담은 사진을 28일 공개했다. 사진에서 정장을 입은 이 전 장관은 게오르규,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사이에서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친한파 작가’로 알려진 게오르규는 1949년 장편소설 ‘25시’를 발표했다.

이어령 서점가 점령베스트셀러 1위 올랐다

1위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차지메멘토 모리9위에 올라

2월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추모 열기가 서점가로 이어지고 있다.  28일 현재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열림원에서 출간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이어령 전 장관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김지수 조선비즈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이날 오후 기준, 예스24의 국내도서 종합 일별 베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2월27일 기준 교보문고 인터넷 일간 베스트 국내 종합 부문에서 역시 1위를 기록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알라딘에서도 판매량이 크게 늘며 27일 기준 일일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알라딘에 따르면 이 책은 전주 주말 대비 26~27일 판매량이 10배 급증하면서 알라딘 일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주 구매층은 40대로 전체 구매자의 38.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마련한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추모 페이지 모습 /사진=알라딘 사이트 캡처 이미지.

여기에다 고인의 마지막 저작인 『메멘토 모리』(열림원) 또한 일일 베스트셀러 종합 9위에 명함을 내밀었다. 『메멘토 모리』는 앞으로 출간될 20권에 이르는 방대한 시리즈 ‘이어령 대화록’의 제1권으로,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에게 던진 종교 및 신(神)과 죽음에 대한 스물 네 가지 질문에 대한 이어령 전 장관의 답을 담은 책이다.

해당 도서 판매량은 전주 주말 대비 12배가량 상승했다. 주 구매자는 40~50대이며, 전체 구매자의 64.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의 딸인 고(故) 이민아 목사 9주기에 출간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개정판도 일일 베스트셀러 38위에 올랐다.

알라딘이 마련한 이어령 전 장관의 추모 페이지에는 생전 그의 저작을 기억하는 독자들의 고인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댓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28일 독자들이 생전 고인의 저작과의 만남을 기억하며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남기고 있다. 댓글을 보면 “선생님이 그간 물려주신 지성의 유산 찬찬히 다 읽어보겠다”, “선생님 책으로 늦게나마 지혜를 얻습니다”, “동시대에 살아 영광이었다”, “큰별이 졌다”, “남기고 가신 말씀 새기고 또 새기겠다” 등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 타계했지만 책 출간은 계속별세 전 30여권 계약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지. 우리는 낭만적인 메멘토 모리, 술 먹고 인생을 논하는 메멘토 모리쯤으로 죽음을 생각했잖아요.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그게 원죄야. 이게 모털(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인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이어령 ‘메멘토 모리’ 중에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떠났지만 그의 책들은 영원불멸하다. “나 절대로 안 죽는다. 언제나 네가 필요할 때 네 곁에서 글 쓰고 말할 거야.”(『이어령 마지막 수업』 중에서)라는 그의 말처럼 ‘시대의 지성’이 남긴 책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28일 출판계에 따르면 이어령 전 장관의 책들은 별세전 계약한 책만 30여권에 달한다.
우선 파람북 출판사를 통해 펴내고 있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두번쨰 책이 3월 출간을 목표로 제작되고 있다. 파람북 관계자에 따르면 ‘젓가락의 문화 유전자'(가제)는 “빠르면 3월, 늦으면 4월 중으로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젓가락의 문화 유전자'(가제)는 젓가락 속에 담긴 한국인들의 밈(문화 유전자)을 탐구하는 책이다. 이어령은 젓가락을 문화적 유전자로 받아들인 한국인의 문화적 우수성을 비교하고 고찰하는 내용을 해당 저서에 담았다.정해종 파람북 대표는 “젓가락만으로 내용을 채운 한국 최초의 책이 될 것”이라고 해당 저서에 대해 소개했다. 2020년 시리즈의 첫 시작인 ‘너 어디에서 왔니'(파람북)를 시작으로 총 10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28일 열림원에 따르면 총 20권으로 기획된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는 오는 4월 출간될 예정이다. 총 20권으로 예정된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도 이제 막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딘다.이어령 대화록의 첫 번째 시리즈인 『메멘토 모리』(열림원)는 고(故)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의 대화록으로 종교와 신과 죽음에 대한 이 전 회장의 스물네 가지 질문에 이어령이 답하는 형식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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